한국일보

눈높이를 낮추어 보면

2010-12-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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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경인년(庚寅年) 호랑이해도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모든 것이 떠나가는 계절, 시간의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벽에 걸려 있는 한 장의 달력이 마치 나목에 붙은 나뭇잎처럼 앙상하게 보인다.

올해는 유난히 세계적으로 다사다난한 해였다. 칠레의 강진, 조국의 서해안 천안함 침몰사고에 이은 최근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 등은 온 국민을 분노와 허탈감에 빠지게 하고 망연자실하게 했다. 이런 사건에 아랑곳없이 2010년은 아쉬움과 회한을 남기며 소리 없이 역사의 한 켠으로 물러가고 있다. 어쩌면 인생은 무작정 걷는 안개 속 여행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해마다 세모가 다가오면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척박한 이민생활에서도 하루하루 호흡하며 살아 온 시간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이따금 삶이 버거울 때는 창밖 나목을 바라본다. 아련한 나뭇가지 끝에 눈길이 머물면 왜 그렇게도 마음이 허해지는지, 가슴을 열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자연은 태풍이 몰아치고 온몸에 상처를 입어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묵묵히 제자리를 지킬 뿐이다. 대자연은 새소리, 파도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화음을 창조하며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듯 자연의 순리는 곧 사람이 사는 이치인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사는 인생도 늘 순탄하지만은 않다. 비바람 몰아치는 역경 속에서도 인간은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살아간다. 때로는 보잘것없는 인간이지만 우리에게는 고귀한 영혼이 있다.

나도 네 명의 손자손녀 할머니 되어 일상생활에만 급급한 나머지 나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 삶을 살지 않았는지 뒤돌아보며 반성하는 계절이다. 내일을 향해 끝나지 않는 노래가 울리는 계절, 가진 것이 아무리 작아도 이웃 사랑에 눈돌려보면 어떨까.

세모는 나눔의 계절이다. 조금만 눈높이를 낮추어보면 삶이 달라진다. 악보는 연주되어야 음악이 되고, 종은 울려야 소리가 난다. 이웃도 사랑을 베풀어야 진정한 사랑이 된다. 그래서 12월은 기도하는 심정으로 나날을 겸허히 보내게 된다.

성탄을 알리는 징글벨 소리가 귀를 울리는 12월은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풍성해지고 한편으로는 들뜨게 만드는 달이기도 하다. 이 한해를 보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면 잃은 것도 많지만 어려운 삶 속에서 세상을 바로 보려는 노력 속에 나름대로 행복하고 감사한 날이 더 많았다.

행복과 기쁨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역경과 눈물에도 감사드린다. 나무 한 그루에서도 삶의 지혜를 찾고 또 견딜 수 있을 만큼 어려움 주시고 몇 배로 갚아주시는 조물주의 은혜에 감격하며 깊어가는 겨울밤, 세모의 기도를 올리며 유순한 토끼의 해 신묘년(辛卯年) 새해를 맞고 싶다.


채수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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