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웠던 연평도가 북한의 포격으로 불에 타고 상처를 입은 모습을 보니, 침통하고 가슴에서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SF노인회 최봉준(84) 전 회장에게 북한의 이번 연평도 만행은 분노 이상의 뼈저린 아픔으로 다가온다. 최옹에게 연평도는 고향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는 1940년대 초 연평도 연평 국민학교에서 첫 교편을 잡고 20년간 살면서 그 곳에서 청춘을 보냈다.
“저녁이면 마을 곳곳의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동네 어귀에서부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그림 같은 섬이었습니다. 6·25사변 때도 이런 일은 없었는데,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최옹은 아름다운 추억외에도 사촌동생 최봉우(55)씨가 연평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생사 확인을 위해 통화를 시도 하는 등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23일에서야 통신시설이 복구돼 겨우 사촌과 통화 할 수 있었다.
“사촌 동생 걱정과 조상님들의 묘가 연평도에 안치돼 있는데 혹시 훼손됐을까봐, 조상님을 어떻게 봐야할 지 좌불안석이었습니다.”
최옹은 북한의 천인공노할 도발에 정부가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무고한 연평도 주민들을 향해 포탄을 날리는 북한의 행동은 ‘정신병자’와 같습니다. 다시는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강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최옹은 또 연평도 주민들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는 만큼, 안전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한다고 주문했다.
<김판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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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준 SF노인회 전 회장이 연평도 이야기를 꺼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