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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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모음

2010-11-0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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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 칼럼

컴퓨터 사용능력이 이제는 생활 필수능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요즘 아이들은 특별히 가르쳐 주지 않아도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쓰는 것이 신기할 정도여서 디지털 세대는 그 능력을 타고 나는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연세가 드신 분들도 어쩔 수 없이 배워야하는 압력을 느끼고 시작하자니 귀찮기 한이 없다.

컴퓨터를 사용해 보면 이젠 없이는 못 살고 쓰자니 다리에 채워진 족새처럼 억압을 느끼기도 한다. 컴퓨터가 많이 보급되며 겨우 사용만 하는 위치의 사람들에게는 인터넷을 타고 들어와 컴퓨터를 느리게 하고 파일을 못 쓰게 만들고 하는 바이러스며 스파이웨어며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바쁜 정보사회에 특별할 방어체제도 갖추지 못한 우리를 노출시키고 있다.

컴퓨터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가 사람의 인지과정과 비슷한 과정으로 개발되었다는 점이다. 오감을 통해 정보가 들어오듯이 컴퓨터에는 당연히 자판이나 마우스 등으로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들어온 정보를 대뇌에서 인지하고 생각을 해 결정을 내리듯 컴퓨터는 CPU를 통해 입력된 정보를 분석하고 계산하여 답을 내게 된다.


사람은 행동이나 말로 표현하게 되고 컴퓨터는 화면이나 프린터기에 표현을 해 낸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머리와 컴퓨터의 CPU 안에 들어온 자료를 기록하고 정리하고 저장해야 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대한으로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것이 좋다.

망각속도를 연구한 에빙하우스 (Ebbinghaus)는 정보가 단기 기억에서는 쉽게 사라지지만 장기기억으로 들어간 정보는 기억해 내는 과정에 문제가 있을 뿐이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을 돕기 위해 유추를 돕는 방법을 사용하는 암기기술까지 동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억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입력된 정보를 잘 분석을 하고 정리를 해서 종합하는 암기 이상의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컴퓨터 윈도 프로그램 중에 조각모음이란 재미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컴퓨터에 입력된 정보가 하드드라이브의 여기저기로 마구 나뉘어 저장되고 그로 인해 컴퓨터의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보를 모아주는 기능을 한다.

조각모음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그래픽으로 화면에 보이는 컴퓨터의 머릿속을 보면 여기저기 구멍이 난 부분들을 여기저기 흩어진 정보를 읽어다가 모아 차곡차곡 쌓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냥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참 재미있다. 내 머릿속도 이렇게 복잡하겠지 하는 생각에 조각모음을 하는 동안 내 머릿속도 조각모음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보면 학생들의 머릿속에 너무나 많은 정보가 정리가 안 된 채 입력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를 놓고 단답형 질문을 하면 이 과목 저 과목에서 들은 정보로 내가 모르는 내용까지 기가 막히게 답을 한다. 앵무새처럼 사실에 대한 정보는 그나마 외워내는데 그리 큰 어려움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좀 복잡한 토론을 하려면 하나하나 알던 정보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몰라 할 말을 잃고 당황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미국의 교육도 어느새 암기위주로 단답형 내용만을 되내이는 학생들을 양상하는 체제로 바뀐 것이다. 그것은 쉽게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이기는 하다. 하지만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러한 지식의 조각들을 모아 자신만의 삶에 적용하고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컴퓨터가 조각모음 프로그램으로 가끔 머리를 정리하듯이 우리도 가끔 정리를 해야 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을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찾아내는 정보의 활용법을 알아야 한다.

우리 머릿속의 정보를 조각모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끔 시간을 내어 사색하고 깊이 생각하며 주변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방법이다.


김효선
<칼스테이트 LA특수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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