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화 한통의 행복

2010-10-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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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은 인생의 가을 들길을 걸어가는 노년들에게는 더욱 허허롭고 외로운 때이다. 자녀들은 둥지를 떠나 모두 제 짝을 찾아갔다. 웃음 넘치던 지난날은 가버리고 방안 가득 외로움만 쌓이는 게 노부모들의 삶이다.

며칠 전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나 하고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면서 친구는 땅이 꺼질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이 생일인데 두 아들과 며느리들이 전화 한통 없다는 것이었다.

“헛살았다니까. 저희 두 형제를 내가 어떻게 길렀는데…”


나는 친구의 허전한 가슴을 채워 줄 대답을 찾지 못했다.

자녀들은 늙은 부모에게 전화 한통 하기에 왜 그렇게도 인색하단 말인가. 얼마 전 양로원을 방문하였을 때였다. 복도에서 혼자 서성이는 할머니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해도 대답은 건성이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느냐고 물었다. 외아들이 의사인데 오래도록 전화가 없어서 초조하고 불안하여 혹시나 찾아올까 밖에서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기약 없이 행여나 하며 기다리는 노인의 초점 잃는 눈동자는 애처롭고 서글퍼 보였다. 아무리 바빠도 1분 동안의 안부 전화면 노부모의 하루가 행복할 수 있을 터인데 말이다.

노년을 잘 보내려면 미리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운동을 하며 건강관리도 잘 해놓고 취미 생활도 즐기며 자녀들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살아갈 수 있게 해두어야 서로가 부담을 주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단출해진 환경을 마음껏 누리며 경제 형편에 따라 맛있는 것 먹고 좋은 구경 다니며 즐기면 마음도 젊어지고 몸도 건강해진다. 자신을 위해 최대한 행복하게 살아갈 때가 바로 노년기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딸아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우리 식구들 만난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저녁식사 한번 같이 해야지요"
“그래, 전화 주어서 고맙다. 한번 만나자"


따르릉 하고 점심때는 막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별일 없으시죠? 어디 계세요?”
"응, 나 잔디밭에서 풀 뽑고 있어"
"하하하, 우리 엄마 멋쟁이. 골프 치시죠. 그럼 즐겁게 노세요”
저녁을 먹고 난 뒤 큰 아들에게서 또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은 세 아이들로부터 전화를 받고 나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노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달리 바라는 게 없다. 따르릉 걸려오는 자녀들의 전화 벨소리가 부모들 가슴에 행복감을 안겨준다. 짧은 전화 한통이 맥없이 사그라져가는 노부모에게 보약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배우자와 오손도순 행복하게 살아주는 것만이 부모들의 바램이다.


박 안젤라 아동 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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