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통의 순간들

2010-10-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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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끝날 무렵 몸에 탈이 났다. 좀처럼 자리보고 누울 만큼 앓는 일이 없었는데 병이 손님처럼 찾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가벼운 감기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픔의 강도는 심해졌고 기침의 고통은 절정에 달해 기침할 때마다 숨이 꼴딱 넘어가는 것처럼 괴로웠다. 신체의 리듬이 크게 어긋난 듯한 조짐을 느끼면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저항력이 떨어지는 나이니 무리하지 말고 철저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당부를 하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병원을 다녀온 후, 시간 맞춰 약을 챙겨 먹고 약기운에 취해 잠자고, 꿈도 꾸며, 자리보전한 환자노릇을 했다.


조용한 동네인데다 오전 중에는 이웃집들이 비어 있어서 더욱 적막하다. 세상이 나로부터 떨어져 나가 아득한 곳을 향해 돌아서는 느낌이 들며 외로움은 바늘처럼 날카롭게 명치끝을 파고들었다. 창으로 흘러드는 햇빛과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를 바라보며 가족과도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사람들의 꽉 짜인 일정표에는 ‘앓아눕기’라는 항목은 들어 있지 않다. 누구나 평생 앓는 일이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인생의 시간은 일과 놀이, 휴식으로 나뉠 뿐, 병의 몫은 계산되어 있지 않다. 병은 항상 예기치 않은 어떤 것이고, 난처한 궤도 이탈이기도 하다.

시간은 모든 것을 잊게 한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흘러갔어도 잊혀 지지 않는 일도 있다. 남편이 병원의 침대 위에 누워 있던 모습도 결코 잊혀 지지 않는다. 나의 모든 기억 중에서 가장 비통하고 지워질 수 없는 영상이다.

온 하루가 고통 중에 흐르고 그 고통은 다음날로 이어지며 한 달이 넘는 날들을 몸의 고통에 사로잡혀 수난을 겪는 동안 차츰 기침이 멈춰지며 건강이 회복되어 갔다. 시간이 나를 치유한 것이다. 치유의 효능이 있었던 것은 나를 아끼는 사람들의 사랑과 기도의 덕이었을 것이다.

인생길을 오르며 산다는 것은 예고 없이 닥치는 고난과 시련에 대결하며 그 고통들을 겪어내는 일이다. 삶 속에서 만나는 천둥이나 벼락, 유혹 혹은 상처, 슬픔과 역경, 이 모두를 겪어낼 때 우리는 성숙하고 겸손한 새 사람으로 태어난다.

어찌 병에서 오는 고통 뿐 이겠는가? 공평한 배급처럼 생명이 있는 자에게는 다양한 모습의 마음 아픈 일들이 사전 통보 없이 찾아와서 삶의 고통은 끝이 없다.

그러나 인간은 어떠한 고통의 순간에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본능을 지닌 존재가 아닌가. 세월에 묻어온 용기와 지혜가 그 고통을 겪어내게 인도해 줄 것이며 겪어낸 고통의 크기만큼 생의 진주는 반짝이게 될 것이다.


김영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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