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솔길 옆 금붕어

2010-09-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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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권유로 LA 코리아타운에서 15분 거리의 그리피스 팍을 자주 찾고 있다. 이른 아침에 가서 한두시간 걷고 내려오면 하루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한국의 산인가 싶을 정도로 한인들이 많이 찾는 이곳에는 조깅이나 걷기에 좋은 트랙이 여럿 있다. 거리가 조금 긴 길, 언덕을 제법 오르는 길, 그런가 하면 길옆으로 계곡물이 졸졸 흐르는, 비밀스럽고 신비스러운 느낌까지 드는 오솔길도 있다.

얼마 전에 발견한 한 오솔길은 조경이 아주 훌륭했다. 돌담을 따라 산책길이 펼쳐지더니 이어 계곡의 경계를 따라 통나무로 만든 손잡이가 지그재그로 이어지고, 그림 같은 작은 구름다리가 나오고, 굽이굽이 길을 따라 간간이 설치된 돌 벤치들도 운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주변을 풍성하게 채운 예쁜 꽃과 나무들.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지 않다면 어디하나 나무랄 데 없는 풍경이었다.

한국은 올 여름 잦은 호우로 피해가 막심한데 이곳 남가주에서는 비를 보기가 힘들다. 언제나 그렇듯 여름이면 가뭄으로 산천초목이 메마르다.

그 멋진 오솔길도 메말라서 계곡은 말라붙었고 간혹 고인 물웅덩이에는 낙엽들이 쌓이고 이끼가 엉겨 붙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바탕 소나기라도 쏟아지면 쌓인 먼지가 시원하게 씻겨내려 가면서 내 마음도 확 트일 것 같았다.

조금 더 거닐다 보니 작은 구름다리 밑에서 졸졸 물소리가 들렸다. 어디에서 부터인가 산줄기를 타고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리 밑으로 내려가 보니 물이 고여 작은 연못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맑은 물속에서 새빨간 금붕어들이 떼를 지어 놀고 있었다. 크고 작은 것들이 평화로이 노니는 모습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싱그러웠다.

신기하고 예뻐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들여다보고 있는데, 어느 나이 든 한인남성이 가까이 왔다. 그리고는 그 역시 "와!"하고 감탄을 하더니 곧 이어 나의 귀를 의심할 말을 툭 던졌다.

"내일은 물고기 잡는 망을 챙겨 가지고 와야지!"

그리고는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순간 멍한 기분이었다. 한인들의 공중도덕 의식이 이 정도인가 하는 생각에 기분이 씁쓸했다.


그리피스 팍은 한인들이 많이 오는 곳으로 미국인들도 잘 알고 있다. 아직도 공원에서 물고기 잡아가고 꽃 꺾어가고 쓰레기 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한인이라면 창피하다 못해 가슴 아픈 일이다.

아마도 예산 부족으로 그리피스 팍도 전처럼 관리가 잘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 한인들이 힘을 합하여 이곳 관리에 신경을 쓴다면 그리피스 팍이 더욱 자랑스런 명소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몸이 불편한 분들, 마음이 아픈 분들, 머리가 복잡한 분들이 모두 와서 평안을 얻는 우리의 안식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에바 오 /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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