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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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홀로 서지 못하는 나무

2010-08-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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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은주 뉴욕한인교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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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아동작가, Shel Siverstein 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 는 나무의 위대한 역활을 일깨워 준다. 나무는 우리에게 집을 지으라고 목재를 주고, 여행을 하라고 배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되어 준다. 나무는 우리가 더워서 시원한 그늘이 필요할 때는 우거진 나뭇잎으로 햇볕에서 보호해 주고, 늙어서 다리가 후들후들 할 때는 앉아서 쉬라고 토막의
자 가 되어 준다. 나무는 늘 우리 인간에게 베풀고 희생한다. 이 이야기를 전제로 나는 “부모 나무” 그리고 “자식 나무” 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나무란 존재는 이렇게 훌륭하고 희생적인 존재이다. 나무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비바람이 불어도 부러지지 않고, 뿌리채 뽑히지 않고 홀로 설 줄 알아야 한다. 뿌리가 썩어 들어가면 아무리 거대한 나무라도 강풍에 뿌리채 뽑힐 수 있고 벌레로 인해 나무통이 텅텅 빈 껍떼기 나무가 될 수 도 있다. 아무리 뿌리가 튼튼해도 우거진 잎이 없으면 햇님부터 에너지를 못 받아 광합성을 할 수도 없다. 이렇게 나무는 뿌리도 튼튼, 몸도 튼튼 그리고 가지와 잎도 풍부해야한다.

나는 최근에 홀로 서지 못하는 “자식 나무” 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거대한 나무로 자라길 기대하면서 “부모 나무” 가 뼈 빠지게 일하고 교육시켜 명문대에 보낸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학업을 마치고 직업에 종사 하고 “어른 나무” 가 되어 한 인간의 삶을 개척 해 나가길 기대하면서 “부모 나무”는 “희생의 나무” 가 된다. “부모 나무”는 늘 자식나무를 걱정하면서 자식이 거대한 “자식 나무가” 되길 기대한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거대한 나무가 될 “명문대” 학생이 퇴학을 당하고 집으로 다시 “기어 들어와” 부모의 자그마한 공간에 들어와 산다. 어쩐 일일까? 전에는 깊은 숲속에 커다란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자식” 나무” 학비 대느라 숲도 떠나고 커다란 집을 팔아서 “자식 나무” 에게 바
쳤다고 한다. 그리고 희생적인 “부모 나무” 는 자그마한 단칸방으로 이사해 “자식 나무” 가 잘 커주기만 매일 매일 기도 했다고 한다. “부모 나무”는 학원이란 학원은 다 찾아다니면서 “자식나무” 의 보충수업에 열을 냈고, 예술, 스포츠, 클럽 활동, 여행, 명품 옷, 신발 등 모두 거대한 “나무 자식” 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희생해 왔다고 한다. 내가 배 고프고 추워도 “자식 나무” 는 풍부하게 따뜻하게 살리기 위하여.

헌데 거대한 나무가 될 명문대 졸업생이 졸업한 후 홀로 서지 못 하고 부모 품으로 들어와 자그마한 공간을 함께 누린다. 집에 들어와서도 “자식 나무” 는 부모의 가사일은 도와주지 않는다. 오히려 용돈을 타서 쓴다. 자동차도 “부모 나무” 것을 맘대로 몰고 다닌다. 어떤 때는 “부모나무” 의 자동차가 너무 구식이라면서 더 좋은 최신 자동차를 요구한다. 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놀고 먹는 게 일이니 일어 날 필요가 없기에 아예 올빼미 대학 시절로 돌아간다. “자식나무” 는 너무나 편하게 부모가 해 주는 밥, 집, 용돈, 자동차 등등을 누리며 하루 하루를 산다.

어찌된 것 일까? 어떻게 “명문대 나온 자식 나무” 가 이렇게 염치없는 나무가 되었을까? 이것은 자연의 이치가 아닌데. 어떻게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까? 하나부터 열까지 오직 “자식나무” 를 위해 희생한 “부모 나무” 의 심정은 어떨까? 지구 온난화처럼 자연 현상에 커다란 타격이 왔을까? 나는 걱정이 된다. 나는 “부모 나무” 가 불쌍하다. Shel Siverstein 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The Giving Tree)’ 의 마지막 장면은 참으로 비극스럽게 끝이 나는데…우리 “부모 나무” 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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