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결국은 운명인 것을

2010-07-21 (수)
크게 작게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운명이다. 지나고 나면 환하게 보이는 운명이 안타깝게도 한 치 앞을 보여주지 않으니 인생을 좋은 길로만 끌고 갈 수가 없다.

운명을 조금이라도 미리 알고 산다면 원하는 대로 팔자가 좋아질 터인데 지나고 나서야 보란 듯이 얼굴을 들이민다. 마지막 지점에 가서야 비로소 “아! 이것이 모두 운명이었는데 이걸 위해 나는 분주히 동분서주하며 여기까지 달려 왔구나” 하고 깨닫게 되곤 한다.

삶에는 시간이 있고, 인생에는 세월이 있다. 이 둘을 다 소비하고 나서 노쇠해진 다리를 주무르며 뛰어넘지 못한 운명을 바라본다.

이민은 개척이라고 했고, 개척이 아니면 이민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것도 지나고 보면 운명이고 운명이 바뀌지 않으면 이민의 내력이 숙명으로 정착하고 만다. 모두가 해보지 않았던 짐꾼 노릇을 하면서 가냘픈 어깨를 떤 이민. 시련의 상처가 나으면 백전불굴의 정신이 낳은 열매가 있을 거란 바람을 가지고 시간과 세월을 다 소비했지만 소비 끝에 남은 것은 핼쑥한 얼굴뿐이고 그 얼굴위에서 운명이 웃고 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만난 사람과 한 평생을 한 지붕아래 같이 사는 것도, 한 평생을 알고 지내는 것도 운명이다.

아쉬움과 쓰라림을 남기면서 언제나 동행하는 운명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여 세상사는 사람들의 눈동자를 서로서로 모두 닮게 한다. 눈물의 색깔이 같고, 눈웃음의 모양이 같고, 그리움을 담은 눈이 같다. 그리고 소리 감춘 눈길 속에 터질 듯 말듯한 절규가 같다.

수지타산을 내세울 수 없는 이승에서의 삶은 그저 꺼내 쓰기만 하는 업의 연속이었고, 그 연속의 끝은 결국 운명으로 규정을 짓고 만다.

인생은 외줄기, 그 외줄기 인생에서 어느 사람은 정치에 관심이 많아 정치 논란에 동분서주하고, 어떤 사람은 경제철학에 관심을 쏟고, 어떤 사람은 별반 배운 것도 없는데 만물박사, 아니면 백과사전이 되어 전시하기에 열을 올린다.

필요 없는 가지를 많이 내놓고 잔바람에도 시달리는 나무들, 그게 다 운명인 것을 어찌 하겠나. 꿈이 절망으로 바뀌고, 행복이 불행으로 바뀌고, 기쁨이 서글픔으로 바뀌는 동서남북의 길, 어느 방향을 잡고 가더라도 피해 갈 수 없는 운명 의 길에서 그래도 사람들은 불빛을 보고 간다.


김윤태 / 시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