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타바바라 뮤지엄 한국현대사진작가 40인전
전시회 하나를 보러 샌타바바라까지 다녀오는 일은 마음먹기에 따라 너무 멀기도 하고 너무 즐겁기도 하다. 샌타바바라까지 두 시간 길을 그야말로 전시회 하나만을 보러 드라이브 하라면 지루하겠지만, 주말에 가족끼리 친구끼리 짝을 지어 떠나면 일부러도 가는 소풍, 훨씬 더 재미나고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지난 주 토요일(10일) 그렇게 친구들과 샌타바바라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현대사진작가 40인전 ‘혼란 속의 조화’(Chaotic Harmony: Contem-porary Korean Photography)를 관람하고 돌아왔다. 여섯 명의 중년여성들이 왕복 네시간 동안 한 차를 타고 다닐 때 당연히 피어나는 대화의 꽃, 시내 위치한 와이너리(포도밭은 없고 테이스팅 룸만 있는)에서의 와인시음, 그리고 맛있는 식사와 쇼핑이 곁들여진 전시회 관람은 LA에서 미술관을 찾는 경험과는 전혀 다른 흥분된 것이었다. 긴긴 여름, 어느 하루 날을 잡아 9월19일까지 계속되는 이 사진전에 많이들 다녀오시면 좋겠다. 전시회가 이유인 나들이는 왠지 핑계도 멋있지 않은가.
7월10일은 뮤지엄 회원들을 위한 오프닝 리셉션이었다. 낮에 도착해 시내에서 돌아다니다가 오프닝 시간인 오후 5시30분 샌타바바라 뮤지엄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깜짝 놀랐다. 뮤지엄 전시회 오프닝에 많이 가보았지만 그렇게 사람이 복닥이는 광경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샌타바바라는 문화수준이 높아서 뮤지엄 오프닝이 늘 이렇게 성황인건지, 특별히 한국사진전에 관심들이 많아서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대다수가 나이 든 백인 관객들이 작품 하나하나마다 붙어 서서 열심히 설명을 읽고 관람하는 모습은 확실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이 작품전에는 현대 한국을 대표하는 20~50대의 사진작가 40명이 한 작품씩(경우에 따라 2~3개 연작) 출품하고 있다. 작품들은 가족, 도시화와 세계화, 정체성, 자연, 추억, 불안 등 6개 주제로 나누어 걸려있어 지난 20~30년 동안 급변한 한국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소개하고 있다.
급성장한 한국(김대수, 안세권), 집단과 정체성의 고민(오형근, 배찬효, 인효진), 한국의 자연(여락, 정주하), 물질만능(파야, 김상길), 획일적이며 가부장적인 사회(윤정미, 구성수, 이선민), 판화 혹은 드로잉 같은 느낌의 명상적 사진(구본창, 이정진, 김수강, 배병우, 민병헌) 등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다.
그런데 사진전이라고 해서 아름다운 풍경이나 멋있는 사진을 기대하고 가서는 좀 어리둥절할 지도 모르겠다. 현대의 사진예술이란 현대미술과 마찬가지로 대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에 작가의 생각과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시에서도 일반적인 기대를 배반하는 경우가 있음을 알아두는 것이 좋겠고, 따라서 설명을 다 읽어봐야 작품을 잘 이해할 수 있으므로 시간을 충분히 갖고 둘러볼 것을 권한다.
전시장에서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에서 온 유일한 작가인 구본창씨를 만났다. 한국의 대표적 사진작가 중 한 사람인 그는 현재 필라델피아 뮤지엄에서도 개인전(‘Plain Beauty’ 6월19일~9월26일)이 열리고 있어 두 행사 오프닝을 모두 커버하면서 11일 샌타바바라 뮤지엄에서 ‘작가와의 대화’도 참가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그에게 한국작가들을 대표해 이 전시에 대한 소감이 어떤지 물었다.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일본과 중국에 비해 한국의 사진예술은 미국에서 소개된 적이 거의 없었어요. 작가들은 한두 개씩 밖에 내놓지 못했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기획전이 열리는 것은 좋은 기회이고 영광이라고 봅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월드컵이나 삼성, 현대 같은 브랜드 때문에 한국에 관심은 있지만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한국의 생활상을 본 적이 없어 이 사진전이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렇다면 일본 중국의 것과 한국의 사진이 다른 점은 무엇인가.
“‘혼란 속의 조화’라는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한국은 현재 혼란스럽습니다. 한국의 특징을 한두가지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죠.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하잖아요. 그 역동성과 다양성과 함께 정체성 자체의 혼란이 있는 작업들을 하고 있지요. 젊은 작가와 전통 작가,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작가 등 한국사회에 대해 새로운 눈과 다른 눈으로 보면서 서로 다른 작업을 하는데서 오는 혼란 속의 조화를 볼 수 있습니다”
전시장 한쪽 방에서는 4개의 모니터에서 인기 드라마들(아이리스, 대장금, 커피 프린스 1호점, 선덕여왕)이 돌아가고 있다.
Santa Barbara Museum of Art 주소 1130 State St. Santa Barbara, CA
문의 (805)963-4364, www.sbma.net
<정숙희 기자>
샌타바바라 미술관 전시장에서 만난 한국의 대표적 사진작가 구본창씨. 그는 현재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조선백자에 관한 개인전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