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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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따돌림으로부터 자녀 지키기

2010-07-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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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 뉴욕차일드센터 아시안클리닉 부실장, 임상심리치료사

올 해 초 매사추세추 주에서는 집단적으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던 15살짜리 여학생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해 미 전역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최근에 가족과 함께 아일랜드에서 이민온 이 여학생이 인기 많은 학교 풋볼선수와 잠시 사귄 것이 발단이 되어 동료 학생들로부터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꽃다운 여학생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고 9명의 가해 학생들은 형사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미국에서는 학교 내 따돌림, 이른바 왕따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사실, 학교 왕따 문제는 어제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미국 청소년의 30% 정도가 왕따를 가해한 경험이 있거나 피해를 당하고 있을 정도로 어린 청소년들 사이에서 학교 왕따 문제가 만연되어 있다. 필자가 일하는 클리닉에서도 종종 학교 왕따 피해를 당한 한인 아이들이 심리치료에 의뢰된다. 수줍움이 많았지만 공부를 곧잘 하던 한 학생은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몇 달간 따돌림을 당했다. 친구들은 이 학생을 복도와 길에서 가로 막고 위협했으며, 의도적으로 소외시켰고, 별명을 부르면서 놀리곤 했다. 결국 이 학생은 불안장애가 생겨서 학교 가기를 거부하다가 클리닉에 의뢰가 되었다.


최근에 실시된 뉴욕시 한인 청소년 왕따 연구에서도 13세에서 19세 한인 청소년의 29.2%가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으며 또 이 중에 절반 정도는 다른 학생들을 따돌린 적이 있다고 조사되었다. 우리 한인 자녀들의 상당수가 학교 따돌림의 직접 피해자이거나 가해자라는 것은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학교 따돌림(소위 왕따)은 개인이나 집단이 상대적으로 나약한 학생을 대상으로 무시하거나 음해하고 공격하는 일련의 심리적, 신체적 행위를 지칭한다. 직접적으로 피해 학생에게 폭력을 사용하거나, 위협을 가하거나, 놀리는 행위에서부터 간접적으로 안좋은 소문을 퍼뜨리거나 집단에서 소외시키고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포함된다.

주로 학교의 교실, 복도, 교내식당 및 방과후 학교 등에서 따돌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따돌림이 페이스북, 마이스페이스, 유튜브 같은 사이버 공간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과거에는 학교 공간을 벗어나면 따돌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시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따돌림을 당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학교 따돌림의 피해는 매우 심각하다. 따돌림을 당한 학생 뿐만 아니라 가해 학생도 후유증을 경험한다. 우선 따돌림의 피해학생은 우울증이나 불안증과 같은 정신적인 문제에서부터 학교 가기를 거부하거나 성적이 떨어지는 학업문제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문제로 고통을 당한다.

만약 이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을 경우에는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심리적, 정신적, 사회관계상의 문제를 유발시킬 수가 있다. 또한 피해학생들 중에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따돌림의 가해학생도 학업과 대인관계, 분노와 충동조절 등의 문제를 갖게 되며, 장기적으로 좋은 직업을 갖거나 상급학교로 진학할 확률도 낮아지고, 많은 수가 더 큰 사회적 범죄와 비행에 빠지기도 한다. 결국 따돌림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여러가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자녀들이 따돌림을 경험하지 않도록 부모들이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녀들을 따돌림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부모가 자녀의 감정과 행동변화를 신중히 관찰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즉각적이고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의 상당수는 부모에게 자신들이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오히려 학교생활을 잘 못한다고 꾸중을 들을 수도 있고 불필요한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소에 자녀와 무비판적이고 수용적인 자세로 대화를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자녀도 부모에게 자신들의 사소한 문제까지도 이야기 하려 들 것이다.

간혹 부모들 중에서는 따돌림은 애들이 자라면서 경험하는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거나 자녀들에게 그냥 무시해버리라고 조언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결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가해자로부터 더 심한 따돌림을 유발시킬 뿐이다. 또 가해자들에게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켜주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만약 자녀들이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의심이 된다면 학교 관계자에게 즉시 알려서 상의를 해야 한다. 종종 한인 부모들은 학교일을 간섭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거나 학교가 다 알아서 처리할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따돌림의 최일선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학교 관계자들이 우선적으로 따돌림을 예방하고 대처할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간혹 학교측에서 적절히 대처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주에 따라서는 학교 따돌림 방지법과 예방프로그램이 미비할 수도 있다. 따라서 각 지방정부의 학교괴롭힘 핫라인이나 교육청 상급기관에 보고를 해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찰에 신고해서 사건을 조사하도록 조취를 취해야 한다. 또한 따돌림 피해자가 심리, 정신적, 학업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에는 정신건강 전문가나 전문상담치료 기관에 의뢰해서 도움을 받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자녀들이 다른 학생들을 따돌리고 있을 경우에는 부모가 적절한 조취를 취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가해 학생들도 피해자이고 도움이 필요하다. 따돌림의 이면에는 적절히 해결되지 않은 분노가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녀들이 건전한 방법으로 분노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어려움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들이 모범을 보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집안에서 폭력이 난무하거나 어른들 스스로가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그 모습을 그대로 답습할 것이다.

자녀들이 오랜 시간을 보내는 학교 공간은 자칫 학교 따돌림으로 인해 배움과 교제의 장이 아니라 증오와 폭력의 장으로 변할 수도 있다. 학교 따돌림은 피해자 뿐만 아니라 가해자들에게도 큰 후유증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에 부모들의 각별한 주의와 올바른 대처가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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