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급 노화 현상

2010-07-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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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아시아로 갈 때, 날짜 변경선을 지날 때면 항상 흥분이 된다. 비행기가 태양을 쫓는 동안 갑작스레 시계를 24시간 앞당겨 놓아야 한다. 한 순간에 하루를 늙어 버리는 것이다. 이는 아시아에 들어서면서 문화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과도 걸맞는다.

내 경우엔 한국을 향해 태평양을 건널 때 24시간이 아니라 그 이상을 늙는 느낌이다. 10년 혹은 그 이상. 언어와 문화가 빚어낸 놀라운 결과라 하겠다.

몇 주 후면 50이 된다. 머리가 하얗게 변하기 시작하고 수염은 이미 하얗다. 그런 내가 한국에만 가면, 머리가 완전히 까만 60 이나 70 된 분들 사이에 끼여 여간 난감하지 않다. 아직 아무도 대놓고 머리 염색을 권하진 않았지만, 한국의 검은머리 어른들을 보면 내가 석기시대에서 온 사람처럼 느껴진다.

한국은 가발의 나라라 해도 무색하지 않아 대머리인 편인 난 더욱 난감하다. 결혼 후 20대 후반 부터 한국에만 가면 “왜 가발을 안 쓰세요?” 라는 질문을 받아 왔다. ‘가발’ 하면, 아버지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는 45세 때부터 가발을 쓰기 시작하셨다. 동생과 나는 아버지 앞에서 그 ‘가발’에 웃음을 참지 못하곤 했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쓴단 말인가.


더 나이를 느끼게 하는 것은 언어다. 단 1년의 차이라도 선후배 간에 완전히 다른 동사 어미를 쓰는 한국말은 참 어색하다. 물론 내 클래스의 학생이 나를 처음 만나서 성을 빼고 이름만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고 나도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일단 클래스를 마치고 나를 개인적으로 안 다음 교정에서 만나 내 이름을 부르는 데엔 전혀 반감이 일지 않는다. 10살 정도 어린 동료들도 그저 친구 정도의 동등한 입장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나이에 대해 민감한 세 번째 이유는 한국의 학교에서 본 것들 때문이다. 요즘 학생들은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 몇 년 전 대학원생들과 함께 일했었는데 학생들의 태도가 상당히 어렸다. 심지어 어린아이들 같다.

부정적 의미는 아니다. 상당히 똑똑하고 친절했지만, 24살이라기 보다는 16살 같았다는 것뿐이다. 대학원 여학생들이 사무실을 동물인형들로 장식했다. 그런 것들 때문에 나는 더욱 늙은 것 같다.

아시아에선 노교수가 갖는 이점이 있다. 나이 때문에 더 존경 받고, ‘교수’이기 때문에 또 존경 받는다. 물론 높이 살 일이다. 유럽과 미국의 문화에도 천년 이상 학자를 존경했던 옛 문화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존경하면 형식과 거리를 두게 되어 꼭 이점이라고만 볼 건 아니지만.

아시아에서 학자에 대한 이미지는 컴퓨터 앞에서 코드나 수학 공식을 타이프 하는 나 같은 학자상이 아니다. 붓, 먹물, 종이를 앞에 놓고 한자를 멋지게 쓰는 유학자이겠다. 얼마나 멋지게 늙는 삶인가. 불행하게도 서양인인 내겐 그 모든 게 역행하는데다, 오래 된 내 두뇌마저 이젠 한자 감당이 힘들다. 현재 400개가 저장되어 있는데, 50개를 새로 외우면 60개를 잊고 만다. 다행히 한국은 전에 비해 한문 배우는 일이 덜 중요해 보인다. 가게 간판에서도, 잡지에서도 한문이 사라지고 영어가 보인다. 동네를 함께 산보하시던 장인께서 모든 사인이 영문인 것을 한탄하셨던 생각이 난다. 자신의 문화 속에서 익숙했던 것들이 사라질 때 우리는 나이 드는 것을 더욱 절실히 느낀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24시간을 되돌려 받고, 10년의 나이도 되돌려 받는다. 나는 다시 젊어진다. 1970년 ‘수퍼맨’ 영화처럼, 비행기를 타고 동쪽을 향해 지구를 돌고 또 돈다면 나는 다시 젊어질 텐데. 내가 처음 한국에 갔던 그 시간과 나이로 되돌아 갈 텐데. 88 올림픽이 성대하게 치러지면서 한국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 전환의 시기였다.

외국인으로서 그 시절을 그리워 한다는 건 좀 비정상이다. 어쨌거나, 내 영혼의 일부가 외국과 끊을 수 없는 연관을 갖는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비정상으로 만들고 있다.


케빈 커비 /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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