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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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16강의 흥분

2010-06-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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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월드컵이 “대~한민국” 국민들은 물론 세계인들을 신바람으로 몰고 가고 있다. 경기과정을 TV로 지켜보며 세계의 관중들은 흥분했고 매스컴들도 흥분했다.

특히 한민족의 핏줄을 타고난 한국인들은 남녀노소 구별 없이 16강의 진출을 기뻐하며 “대~한민국”과 태극전사들의 이름을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신명나고 열광적인 우리의 응원 광경은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있다. 조국의 명예와 국가 간의 자존심이 걸린 경기였던 만큼, 더욱 도취했고, 흥분했고 열광했다.
흥분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오래 전에 극도의 흥분으로 이성을 잃었던 한 공항직원이 생각난다. 88년 세계 올림픽이 한국에서 개최되었을 때, 올림픽 중계방 송을 하게 된 남편을 따라 고국을 방문했었다.

그때 한국 대 미국 간 레슬링 경기에서 선수들 간에 스포츠맨십에서 벗어난 불미스런 일이 벌어졌다. 시합은 경기가 아닌 피투성이 싸움으로 마무리 되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돌발사태가 일어난 것이 었다.


이 상황을 지켜본 한국 국민들, 한국 매스컴은 분노했고, 감정적인 흥분이 한미 간의 관계를 묘한 위기로 거세게 몰고 갔다. 뜻밖의 해프닝이 벌어지자 나는 서둘러 출국을 하게 되었다.

공항에서 출국신고를 하기 위해 여권을 제시하자 젊은 남자직원이 잠시 내 여권을 훑어보더니 순간 뻘개진 얼굴을 들며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아니, 아주머니는 미국 사람들이 뭐가 좋다고 조국을 버리고 그 나라에 가서 사세요?” 하며 나를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레슬링 시합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 챈 나는 “아! 네~, 제가 한국을 떠날 때는 한국 경제가 어려워 이민을 장려하던 때라 ~ “하며 직원의 흥분을 가라앉히려 했다. 하지만 속히 그 자리를 떠나고 싶은 내 마음과는 달리 다혈질의 젊은 직원은 시간을 끌며 미국시민이 된 나를 계속 질타했다. 덕분에 내 뒤로 길게 줄지어선 외국인들의 출국수속은 한참 동안 지연되었고, 저마다 비행 탑승 시간을 놓칠까봐 불안해했다. 피 끓는 젊은 청년이 강한 애국심의 발로로 흥분해 분별력을 잃은 것이라고 너그럽게 이해하며 돌아섰던 기억이 난다.

흥분이 인체 상에 어떤 해를 가져온다는 것은 전문 의학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좋은 일, 행복한 일보다 나쁜 일, 기분 나쁜 일이 더 많은 생활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흥분하며 살고 있다. 신문을 펼쳐 들다 가도 혈압을 올리며 흥분하고 불의를 보았을 때도 흥분한다. 예의에 벗어났다 싶을 때도 흥분하고, 무시를 당했을 때도 흥분한다.

우쭐한 기분이 들 때도 흥분하고, 좋은 사람, 그리운 사람을 만날 때도 가슴이 두근거리며 흥분한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흥분하고, 선물을 주고받을 때도 흥분한다. 이처럼 흥분은 생활에 기쁨이 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풀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나친 흥분은 휘발유에다 성냥개비를 그어대는 격이 된다. 이성을 잃고 무분별로 물불을 헤아리지 못하게 된다. 분별력을 잃은 흥분은 꼴불견의 구경거리가 되기도 하고 심한 경우 불행을 초래하기도 한다.

한국의 16강 진출이 기쁜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경기 결과에 따라 너무 흥분하지는 말자. 이겼다가 지고, 졌다가 이기며, 실패했다가 재기하는 이것이 삶이다. 삶의 역전승이다. 많은 것들로 얽히고설킨 게 산다는 일이다. 이길 수도 있고 패배할 수도 있다. 패배 했기에 다시 승리할 수 도 있는 일이다. 감정조절을 적절히 잘 해야 하는 것이 지혜다. 흥분만 하기에는 인생은 너무 길고 너무 복잡하다.


김영중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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