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펌프업/ 웨체스터카운티 브롱스빌 고교 12학년 최문영 양

2010-06-14 (월)
크게 작게

▶ “장미꽃보다 안개꽃 같은 사람 될래요”

기와와 흙, 나무 등 천연 자연재료를 이용한 동양적 특성을 살린 친환경 건축가를 꿈꾸는 최문영(17·미국명 엘리안 뉴욕 웨체스터 카운티 브롱스빌 고교 12학년)양. 이달 19일 고교를 졸업하면 올 가을에는 아이비리그의 하나인 다트머스칼리지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을 앞두고 있다. 이민 온지 불과 2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한국에서도 ‘국사의 신(神)’이라 불리며 전교 석차 5등 아래로는 내려가 본 적 없는 탄탄한 기본기도 무시 못 할 성공 요소임엔 틀림없지만 남들보다 3배, 4배 더 쏟아 부은 숨은 노력과 자신과의 싸움은 실로 눈물겹다. ‘남이 떠먹여주는 방식의 공부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여태 개인과외나 사설학원을 다녀본 적도 없지만 공부하라고 잔소리 한 번 한 적 없던 부모 덕분에 오히려 자신의 의지와 열정에 따라 학업에 욕심을 낼 수 있었단다. 특히 한국에서 보낸 중학교 시절 남녀비율이 5대1인 남녀공학에서 워낙 남학생 텃세가 심해 마
음고생도 컸었지만 돌이켜보면 자연스럽게 경쟁심을 키울 수 있던 시기였기에 지금은 오히려 고마울 정도라고.

덕분에 화학, 환경과학, 세계사, 미국사, 미술사, 대수학 등 AP과목도 줄줄이 이수했고 동기 졸업생 가운데 가장 학과목 평점(GPA)이 높은 상위 10명에 뽑혀 얼마 전 교장과 별도 식사를 겸한 시상식에도 다녀왔다. 이민을 떠나올 때 친구들에게 ‘나중에 아이비리그에서 만나자’며 고별인사를 던지기도 했지
만 정작 자신은 아이비리그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단다. 평소 영화와 미술에 관심이 많아 건축과 영화 일을 꿈꿔왔던 터라 미서부의 UCLA 진학을 계획해왔지만 이민 온지 1년 뒤 당한 갑작스런 모친상을 계기로 진로를 바꾸게 됐다고.


자녀교육을 위해 이민 왔다가 대장암 진단을 받은 지 4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지난해 3월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위해 장녀로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비리그 진학을 목표로 삼게 됐다는 것. ‘장미꽃보다는 안개꽃 같은 사람이 되라’던 어머니의 가르침을 들을 때마다 전교 일등만 하
는 딸에게 가당치도 않은 말이라며 화를 낸 적도 많았지만 안개꽃이 있어야 장미꽃이 돋보이듯 남을 빛내주는 사람이 되라는 깊은 가르침을 어머니를 잃고서야 뒤늦게 깨달았고 이를 토대로 하늘나라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에세이를 대학입학지원서에 제출해 입학사정관들로부터 생애 최고의 감동스런 에세이였다는 칭찬도 받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때가 SAT 수능시험과 AP 과목시험들을 줄줄이 앞뒀던 시기였고 미국생활도 채 적응되지 않은 예민한 사춘기까지 겹쳤던 터라 정신적으로 힘든 나날이 많았던 것도 사실. 어린나이에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해야 하는 장녀란 타이틀과 책임감에 스트레스도 컸지만 살림꾼 동생들 덕분에 잘 견뎌낼 수 있었단다. 짧은 2년의 이민생활 동안 집안에 이처럼 큰일도 겪었지만 바쁜 와중에도 사랑의 집짓기 자원봉사자로 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수해지역을 방문해 10일간 복구 작업에도 참여했고, 학교에서는 밴드와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연주자로, 방과후 홈웍클럽에서는 후배 숙제 지도 봉사활동으로, 모의 유엔 클럽에서는 매니저로 컨퍼런스에도 3회나 참가해왔고, 총학생회에서는 12학년대표 부회장으로 종횡 무진해왔다.

학교 카운슬러들이 ‘끝을 모르는 완벽주의자’라며 혀를 내두르지만 자신의 꿈과 목표가 분명하기에 끊임없는 노력을 쏟아내는 일도 전혀 지치지 않는다고. 대학 진학 후에는 친환경 건축가의 꿈을 이루는 첫 단계로 인도와 중국, 동남아시아 빈민지역에 태양에너지를 이용한 주거공간을 마련해주고 남은 전력을 되팔아 소득을 올리도록 돕는 비정부기구(NGO)를 설립해 활동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이미 수립해놨단다.

풍족한 가정환경은 아니지만 독립심이 강해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틈틈이 안경점이며 피팅모델이며 안해본 일이 없고 지금도 아이스크림 업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대학 입학 전 올 여름 혼자 모험을 감행할 캐나다 몬트리얼 여행경비를 알뜰히 모으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나오던 시절이 지났다’며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 돼야 우등생도 나온다’는 요즘 사람들의 말이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 보기 좋게 입증한 것
만으로도 뿌듯하다는 최양은 최정국·(고)이경숙씨 부부의 3자매 중 첫째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