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까미유 끌로델의 진면목

2010-06-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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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한국일보 주최로 열리고 있는 ‘로댕전’에는 그의 애인이었던 천재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1864~1943)의 영감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사랑으로 빚은 조각’과 ‘까미유 끌로델’로 이름 붙인 두 방에서 전시되고 있다. 그녀가 만든 <로댕의 흉상> 역시 볼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 그녀가 7세부터 75세까지 썼던 편지들이 우리말 번역(’카미유 클로델’)으로 나왔다. 거기에는 가족(특히 어머니와 동생인 작가 폴 끌로델), 친구(플로렌스 진스 등), 로댕, 작품 제작을 의뢰한 장관과 담당자, 잡지에 작품 평을 써 준 작가들과 후원자들(특히 모르하르트, 제프루아, 보에), 화상이며 작품을 사서 수집한 외젠 블로 등과 주고받은 서간이 수록되어 있다.

편지들에 담긴 그녀의 다정다감한 감수성과 애정 어린 필치, 재정난에 허덕여 조각품들의 지불금을 애원하며 재촉한 급박한 요청, 정신병원에 갇혀서 비인간적인 학대를 받으며 가족들에게 자신을 내보내 달라고 절규한 참담한 외침이 이 천재 예술가의 비극적 삶의 진실을 낱낱이 밝혀 주고 있다.


그녀는 13세에 처음으로 조각의 기초를 익혔고 동생 폴을 모델로 흉상 등을 만들었다. 1883년(19세)에 로댕을 스승으로 만나, 다음 해부터 조수로 그의 아틀리에에 들어가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 등을 같이 제작했고 동시에 모델 역할도 했으며, 단독으로 <늙은 엘렌> <나의 남동생> <지강티> 등을 만들었다.

두 사람은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함께 하며 열렬한 애정을 나눴으나, 로댕이 오랜 동반자 로즈와 헤어지지 않아, 그녀는 결국 1898년(34세)에 그와 결별했다. 이때를 전후하여 <클로토> <중년> <왈츠> <상처 입은 니오비드> 등을 창작했다.

그녀는 힘든 조각작업으로 인한 과로로 언제나 건강이 좋지 않았으며, 항상 돈이 모자라 일꾼들에게 제때 지불을 못했고, 빚을 지고 집세가 밀려 재산과 집기를 압류 당했다. 1907년(43세)께부터 로댕에 대한 증오와 피해의식이 심해졌고, 그 후에는 도둑들이 그녀의 작품들을 훔쳐다 판다고 하며 아틀리에를 걸어 잠그고 고립되어서, 조각하는 것을 중단했으며 작품들을 스스로 파괴했다.

1913년(49세)에 가족들의 요청으로 그녀는 아틀리에에서 납치되어 정신병원으로 끌려갔고 이후 1943년(79세) 사망할 때까지 그녀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난방 등 편의시설도 없이, 정신병자들의 고함과 비명 소리에 고통 받으면서, 무려 30년 동안 인간 이하의 조건 속에서 살았다. 그녀가 쓴 편지들은 발송되지 못하고 지금도 병원에 보관되어 있다. 가족 친지가 보낸 서간도 못 받았으며 대부분의 방문객을 못 만나게 하여, 그녀는 몰래 편지를 써서 비밀리에 겨우 부치곤 했다.

그래도 그녀의 작품들은 밖에서 여전히 전시회에 보내졌고, 외젠 블로 등의 애호가들은 그녀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녀가 타계한 후, 1951년, 1984년 그리고 최근 2008년에 파리에서 대규모의 회고전이 열렸고, 1980년대부터는 수많은 연구와 저서가 발표되고 있다. 로댕이 그녀의 아이디어를 빌려서 작품을 만들어 크게 성공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녀의 독창적인 예술품들이 자주 전시되어 그녀의 작품과 삶의 진실성이 높이 평가되었으면 한다.


이연행 / 불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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