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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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연애

2010-05-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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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캐낸 더덕을 먹어서 이렇게 쾌감이 고조되는가? 아니면, 갓 따낸 고사리? 지금 막 먹은 이 산채들은 3일 전만 해도 강원도 깊은 산속 친구의 밭에서 자라고 있었다. 아, 마약이라도 먹은 듯 묘한 느낌이 인다. 무슨 느낌? 사랑.
1992년, 오하이오 한인회보에 게스트로 감히 처음 한국어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외국과의 경험은 연애와 비슷한 과정을 걷는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무조건 좋아 미친 듯 빠져들게 된다. 한국에 대한 내 첫 경험이 그랬다. 따뜻한 사람들, 흥미로운 역사, 맛깔 진 음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언어에 매료되었다. 모든 게 다 좋아 보였다. 한국어의 공손한 표현이 무궁무진하여 흥미로웠다(학생이 교수에게 “교수님, 뭐 드실래요?” 하는 등).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싫증나게 된다. 솔직한 대화를 막으니 때론 참다가 감정을 폭발하기도 한다. 불합리한 것이 많았다. 한국어에 상대를 무시, 멸시하는 표현도 무궁무진한 것을 알게 되었다. (교수가 대학원생 제자에게 큰 소리로 “은희야, 커피 가져와!”하는 등)


모든 것을 솔직하게 보면 좋은 것과 나쁜 것, 사랑과 미움이 서로 평등한 조화를 이루게 되며 그 관계도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논리적이며 진부한 결론을 맺었었다.

2010년에 이른 지금은 좀 더 낭만적이 되었다. 10년 전 한국에서 1년을 살았으며, 그 이후부터는 2년에 한 번 2주 정도씩 방문을 해왔다. 이런 관계의 애인이 있다면, 장거리가 사랑 유지에 도움이 될까? 그럴 것도 같다.

가장 최근의 ‘데이트’인 이번 방문엔 더덕과의 즐거운 기억을 갖게 되었다. 아내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강원도 태백으로 향했다. 연휴라 버스가 기다시피 가서, 5시간 만에 도착했다.

친구 부부의 집은 말 그대로 ‘깊은 산속’이었다. 4륜 SUV가 45분 동안 지그재그로 오르내리는 가파른 산길과 위험한 절벽을 지났다. 석양이 저물 때 도착한 집은 오하이오의 우리 집처럼 조선시대에 지은 집이었다. 맑은 저녁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첩첩산중 앞마당에 놓인 실내용 주물 난로에 장작불이 타고 있었다. 뚜껑 위엔 삼겹살이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진 반달이 어스름히 빛을 비추었다. 죽은 듯 조용한 천지를 뻐꾹새가 간간이 울어 삶을 증명했다.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다음 날, 옆 산에 사는 그들의 친구 두 가족이 놀러 왔다. 한때 사무직원이었으나 지금은 기와 한옥을 짓는 목수, 염색공예가, 한복전문가와의 해맑은 대화. 북 캔터키에 한옥을 짓자는 꿈같은 얘기로 흥분하기도 했다. 아내와 그들이 가파른 곳으로 사라지더니, 곧 씨름꾼 다리만한 칡뿌리, 더덕 한 바구니, 고사리 한웅큼을 들고 돌아왔다. 아, 내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두 가지가 산속 온돌에서 자는 것과 직접 딴 산채를 먹는 것인데.

한국과 나의 연애를 지속시켜 주는 것은 이 ‘장거리’다. 물론 ‘장거리’ 사랑은 지속이 힘들다. 실제로 한국은 내가 없는 동안 수많은 다른 연인들을 사귀었다. 많은 서양인들이 ‘그녀’에 매혹되어 수많은 블로그를 쓰고 있다.


때로는 ‘그녀’가 뻔뻔스럽게 영어간판 따위로 외국인 연인들을 유혹하는 것이 창피스럽다. 태백을 다녀온 다음 날 인천 송도 시를 갔다. 송도는 외국인 유치를 위해 새롭게 디자인 된 도시로 현재 일부 건축이 끝난 ‘미래의 도시’이다. 마치 더 많은 연인을 유혹하기 위해 비싼 새 옷으로 단정하는 여자처럼.

하지만 난 상관치 않으리. 깊은 산속으로 피해 갈 수만 있다면. 혹은, 영어를 듣지 않은 채 며칠을 지낼 수만 있다면, 한국 ‘흙’(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단어 중 하나)에서 자란 신선한 것들을 즐길 수만 있다면 문제가 없다. 우리의 장거리 연애는 여전히 계속 될 것이다.


케빈 커비 -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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