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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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2010-05-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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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이 한마디 앞에 필설을 다한 수식어가 필요치 않다. 오직 한마디만으로 가슴을 친다.

어머니날, 자식들이 카네이션 달아 주고 나가 밥 먹고 그런 절차 밟으면 하루가 진다. 그러면서 나는 수 십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상하며 불효를 후회한다. 어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나는 어머니께 감사하단 말 한번 못했다. 그래서 지금껏 어머니날 마다 후회하며 보낸다.

한 달 전 어느 날 아침, 20년 전 한인 여성 봉사기구에서 알고 지내던 분을 우연히 산책길에 만났다. 그런데 그 분이 우리 집 가까이에 있는 콘도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자주 산책을 함께하면서 그분의 지난날에 관해 몇 마디씩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분의 지난 십 수 년 삶에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지금 70대 초반이다. 그리고 100세가 넘는 노모를 모시고 단 두 분이 살고 있다. 자금으로부터 12~3년 전 그때도 어머님을 모시고 살면서 직장에도 나가고 사회 활동도 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일에서 돌아와 보니 90 노모가 휠체어에서 일어나시다 넘어져 이마에 피를 흘리고 누워계신 모습을 보게 됐다. 힘없이 누워 딸을 올려다보시는 어머니의 그 눈빛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렇게 계셨을까?

그는 어머니를 침대에 눕혀드리고 눈물을 훔치며 결심을 했다. 그녀는 다음날 직장에 사표를 내고 왔다. 그때부터 그녀는 어머니와의 24시간 생활로 들어갔다. 친구도 멀리하고 친척도 안 만났다. 그런 단순한 생활이 무려 열 두해나 지났다고 한다. 100세가 넘으신 어머니는 지금도 딸이 해 드린 음식가운데 맛있는 건 꼭 남겨 주신다. 딸이 빨래하는 일이 힘들다고 속옷도 자주 안 갈아 입으시려하고 휠체어로 외출하는 것도 삼가신다. 어머니의 바깥 구경은 딸이 산책하다 주워 온 솔방울이나 단풍 잎 꽃잎들이다.

남들처럼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양로원에 모시면 편할 턴데 왜 굳이 모시고, 더구나 자신을 희생하면서 사느냐고 물었더니 너무나 평범한 대답이 나온다. 어머니가 그녀를 필요로 했고 그녀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후회 없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나는 수년 전에 중국 북쪽 변방에 사는 70대 노인이 100살이 넘는 어머니를 자전거에 매단 수레에 태우고 수천리길 티베트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책으로 읽고 무척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평생 궁벽한 시골을 벗어난 적이 없는 노모의 소원, 그 하나를 위해 눈비 맞아가며 어머니를 자전거 수레에 태우고 엮는 여정은 너무나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도중에 저세상으로 가지만 소원을 이뤄줘서 고맙고 행복했다란 한마디를 남긴다.

나는 이 두 경우를 보며 효성의 극진함을 보고 감격하지만 그 효성을 가능케 하는 어머니의 놀라운 힘을 느낀다. 그건 어머니의 절대적인 사랑이다. 내게도 그런 사랑의 힘이 넘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 때문에 후일 내 자식들이 후회하지 않기 바란다. 어머니!


배광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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