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월은 가고

2010-05-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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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갔다. 숨겨져 있던 오색물감들이 풀려 나오듯 곳곳에서 빛깔도, 향기도, 모양도, 다채로운 꽃들이 피어나는 화사한 4월을 떠나보냈다.

4월은 만물이 생명의 찬가를 합창하는 달이지만 내 가슴은 밑바닥에 묻어둔 아픔으로 더 할 수 없이 아픈 달이다.

20대에 만나 40여년을 함께 지낸 그를 4월에 떠나보냈다. 그로부터 물이 흐르듯 6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4월이면 병마와 싸우다 귀천 길 떠난 그를 추모하며 마음이 아프다.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손을 잡아주며 임종을 지키지 못한 회한으로 가슴이 에인다.


살아 있는 자들은 돌아오기 위해 때때로 떠난다고 하지만, 박복한 그는 눈물 없는 하늘나라로 영영 떠났기에 치유되지 않은 아픔이 내 가슴 속에 서러운 추억으로 쌓여 있다.

사람에게 주어진 고통 중에서 가장 절절하고 가슴 아픈 것은, 삶의 고락을 함께 했던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곳으로 영원히 떠나보내는 일이다. 만남의 끝에는 어쩔 수 없이 헤어짐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운명이라면 무슨 말로도 그 야속함을 말할 수가 없다. 누구를 탓하고 원망할 수 없기에 운명을 수용하며 그 운명에 충실하는 것만이 내 자신을 달래주는 위로의 방법이다.

구름 속을 아무리 바라 봐야 거기에는 인생이 없다. 똑바로 서서 주변을 둘러보면 그 곳에 인생이 있다고 하는 말처럼 이 세상 살면서 이별을 경험하며 마음이 아팠던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이겠는가,

시련을 견뎌내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라고 하기에 찬비를 견디는 꽃들처럼 현실에 닥친 고통의 순간들을 견디며 강하게 살아냈다. 고통도 단련이 되어 이제는 슬픔도, 이별에도 담담하다. 그의 부재를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의 부재가 얼마나 나를 자유롭게 하는지를 새삼 경험한다.

떠난 그와 함께 할 수는 없어도 삶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홀몸이라는 허전하고 시린 시간 속에서 누구를 의지하지 않고 삶을 꾸려가는 데 이력이 붙었다. 내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대상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고, 혼자 힘으로도 잘 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자신감도 생겼다. 그가 없는 환경에 적응이 된 것이다. 꿈만 같던 고통의 세월을 참고 이겨낸 것은 정신적인 힘이었고 세월이 약이었다.

떠나보내는 것, 상실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 것은 다가올 새로운 것에 대한 바람과 기대 때문이다. 아직도 내 마음에는 꿈을 꾸고 싶어 하는 봄기운이 남아 있다. 이제는 아픔의 덫에 걸린 마음을 풀어내고 혼신의 힘을 다해 굳은 땅을 헤집고 나온 풀싹이 되고 싶다.

4월, 아프면서도 찬란하고 기쁘면서도 눈물겨운 달이 지나갔다. 꽃바람 속에 생명이 소생하듯 내 고단한 삶에도 빛과 신명이 넘치기를 기도한다.


김영중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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