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줄어드는 시간, 줄어드는 공간

2010-04-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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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3년 만에 한국을 간다. 아홉 번째의 방문이다. 안식년 때의 1년을 제외하곤 매번 2-4주 머물었을 뿐이고 이번에도 2주만 있을 예정이다. 그렇다고 여행의 흥분이 줄어들 수는 없다.

이번에도 쉬운 한국책을 들고 한국어를 복습한다. 곧 내 한국어 실력에 실망하게 되고 (한국어 작가인 아내가 없다면 이 칼럼 내용이 어떻게 전달될까?),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또 다시 결심을 하겠지. 그리곤, 서울에서 쓰게 될 다음 칼럼은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써보겠다는 ‘대망’을 품겠지.

첫 한국여행을 하며 747 비행기를 탔을 때였다. 서쪽으로 고속 질주하는 동안 알래스카를 내려다보며 흥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도 항상 눈이 하얗게 덮인 산을 보려고 창문 덮개를 살짝 열지만, 승객이 자거나 영화를 봐야 하니 닫으라는 스튜어디스의 높은 언성만 들을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상상의 우주선을 탄 소년 마냥 즐거워한다.

105년 전의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우리가 빨리 가면 갈수록 주위의 것들이 작아지고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한다. 12살 때, 마술 같은 그 얘기를 듣고 놀라서 한참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 시간에 5억 마일이라는 빠른 속도로 가야만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달에서 돌아오는 우주인들을 보면, 그들이 우주선에서 지냈던 시간은 지구 위의 사람이 지낸 시간 보다 짧다. 그리고 우주선 창밖의 무언가는 그들에게 실제보다 작게 보인다. 시간의 빠름을 얘기하자면 우주선 보다 더 확실한 게 있다. 우리의 나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걸 실제로 경험하지 않는가. 10살에서 15살이 된 시간이 40살에서 45살이 된 시간보다 훨씬 길지 않은가.

1988년 첫 한국여행도 몇 년 전 일인 것만 같다. 어디를 가도 영어가 눈에 띄는 말끔한 최첨단 기술의 나라가 된 것은, 눈 깜짝하는 사이에 생긴 일만 같다. 아, 나는 처음 경험한 ‘1988 한국’이 그립다.


시간보다 더 줄어든 것은 공간이다. 어렸을 땐 디트로이트의 몇 블럭이 큰 나라 같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작은 동네일뿐이다. 인터넷의 위성지도를 펴고 마우스를 빌어 디트로이트에서 서울로 가본다. 잠깐 살았던 올림픽 공원 쪽을 내려다보면 그 큰 공원이 손 한뼘보다 작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그 지도는 너무도 확실하여 신비로울 게 없다. 옆 골목을 돌면 뭐가 있는지를 궁금해 할 수가 없다. 다 한 눈에 보이니까. 아, 1988년, 1955년, 1905년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지도는 없을까?

서울에서 과테말라로 가본다. 18살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곳 북서쪽의 산에서 한 여름을 난 적이 있다. 일기는 매일 자세하게 적었지만 사진은 한 장도 없다. 단지 기억만 있을 뿐. 과테말라어 학자가 되려고 내 인생의 특별한 시간을 보낸 곳이어서, 방을 옮겨도 내 사무실엔 과테말라 지도가 걸려 있다. 자꾸 클릭하며 가깝게 좁혀 들어가 본다. 함께 생활했던 가족의 집은 어디 있지? ‘비밀 반공부대’를 조심하며 친구들과 함께 오르내리던 동산은?
이 지도의 비율은 2000미터 대 1인치다. 당시엔 그 1인치에 내 인생의 너무도 많은 것이 담겨졌었다. 이 지도엔 그저 조그만 동네일 뿐.

50번째 생일을 맞으며, 시간이 다시 십대 때처럼 천천히 가주었으면 싶다. 그보다 더는, 세계지도가 탐험하고플 만큼 넓어졌으면 좋겠다. 위성사진으로도, GPS로도 잡히지 않는 곳이 있는. 몇백년 전 지도에 적혀 있는 ‘미지의 영역(Terra incognita)’ 처럼 흐릿하게 그려진 곳이 있는 지도는 이제 ‘제왕의 반지’ 같은 상상의 지도에서나 볼 수밖에 없다.

‘2010 한국’을 향한 안락한 747은 ‘1988 한국’ 보다 더 알려졌고 더 편안한 곳으로 나를 데려갈 것이다. 일단 도착하면 잠시만이라도 덜 알려졌고 덜 편안한 곳을 찾아 가리라. 그게 바로 외국여행과 외국어의 신비로움이 아닌가. 그것이 바로 다음 달 내가 한국에서 찾으려는 것이다.


케빈 커비 /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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