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와인 향 날라갔을 땐 잔 다시 흔들어 마셔

2010-03-3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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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 제대로 즐기려면 맛과 향 함께 느껴야

호모 루덴스 Homo Ludens 와인은 먼저 색과 향을 즐긴 후, 맛을 즐긴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호이징가는 ‘유희(遊戱)하는 인간’ 즉, 호모 루덴스를 주창하여 종래의 문화가 유희의 상위개념이라는 견해를 뒤집었다. 즉 문화 자체가 유희하는 것에서부터 발달했다는 것이다. 와인은 바로 이 호모 루덴스를 그대로 실증해보이는 술이다. 즉 마시는 문화에서 즐기는 유희의 개념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즐기는 과정에서 하나의 문화로 발전한 것이다. 따라서 와인은 그저 마시는 술이 아니라, 과정 자체를 즐기는 술이다. 그 즐기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문화, 즉 매너로 자리잡게 된 것이고 와인 주도의 첫 번째 덕목인 것이다.

우리는 맛과 향을 따로 떼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또는 맛은 혀로 느낀다 생각하지만 사실은 혀로 느끼는 맛보다 향이 더 우선한다.
코가 막히거나, 냄새를 맡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맛을 못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생리학자들은 냄새가 인간의 첫 번째 감각이었고 대단히 유용한 것이었으므로 나중에 신경 위에 있던 후각 조직의 작은 덩어리가 뇌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이는 냄새를 맡을 때, 우리가 다양한 연상 작용을 통해 기억을 되살리는 한 과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실제로 냄새는 가장 직접적으로 뇌에 감각을 전달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기억하는 데 있어 냄새와 함께 기억해두면 후에도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와인을 입으로 바로가 아니라, 코를 거쳐 마시는 것은 호모 루덴스의 바탕하에 있으면서도, 또 실제적으로 와인을 기억하는데 아주 유용하다. 감각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습득하고 기억해두었다가 후에 그 느낌을 살려내는 일련의 지적 활동 과정이라는 것은 바로 후각과 뇌의 상관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진정한 와인을 즐기는 방법, 또 그 유희를 통해 문화, 매너를 자연스레 습득하는 방법은 바로 코를 이용하는 것이다.


원점에서 새 출발 Back to the Basic 천천히 음미하며 즐기는 와인은 마시는 속도가 느릴 수 밖에 없고, 오래도록 잔에 채워져 있는 와인은 그대로 마신다면 처음의 느낌을 얻기가 어려워진다.

이럴 때 와인 애호가들은 잔을 다시 흔들어 마시는데, 이것은 와인의 향을 다시 만들기 위함이다. 이 과정은 ‘맥킨지식 사고방식’을 떠올리게 해준다. 즉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보라는, 이른바 ‘Back to the basic’을 말이다. 맥킨지식 사고의 요체는 ‘제로 베이스(Zero-based) 사고’를 말한다. 즉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백지상태에서 다시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가설사고, 즉 어떤 시점에서 결론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고의 한계를 넘게 해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와인의 향기가 서서히 변해가듯이 비즈니스 환경도 시시각각 변해간다. 이럴 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백지상태에서 그 문제를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향기가 날아갔다 싶으면, 잔을 흔들어 다시 향을 만들어 마셔라, 그 속에 담긴 것이 와인이든, 사업이든 말이다.


‘성공 비즈니스를 위한 와인 가이드’ (김기재 지음·넥서스 Book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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