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질 수 있는 종이

2010-03-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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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증-증조부 로부터 물려 받은 책장이 있다. 그 서랍 속엔 그 분의 손자 즉 나의 할아버지의 편지들이 담겨 있다. 그 중 하나를 꺼내 본다. 봉투는 작은데 편지지가 제법 무겁다. 1920년의 소인이 찍혀 있다. 나의 미래 할머니 로라가 할아버지 헐만에게 보낸 편지다. “…굿나잇을 말할 시간이 오면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아무도 상상 못 할 거에요. 오늘 하루 종일 어젯밤 당신과 했던 즐거운 대화를 생각했어요….”

나는 할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내가 태어나기 4년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책장서랍 속 편지 50여개를 통해 할머니를 만난다. 그러면서 항상 걱정되는 것은, 이 귀한 유물을 어떻게 보관해야 안전할까 이다. 복사를 해서 컴퓨터 화일로 보관할까? 아니,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아들도 이 편지들을 읽을 만큼 관심을 가질까 하는 것이다. 그 아이의 자식들은 또 어떨까? ( 내 조부모의 조부모들은 그들의 북캐롤라이 소도시 생활을 담은 편지를 어떻게 보았을까? )

헐만과 로라가 주고 받은 편지들은 그저 일상에 관한 글로 별 특별한 내용이 없다. 하지만 그 편지의 숫자는 놀랍다. 요즘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상당량의 ‘문자’를 만들어 낸다 (문자 메세지 혹은 페이스 북 게시물). 그 양은 빛바랜 편지들과는 감히 비교되지 않을 정도다.


사람들은 곧 그 게시물들도 보관하려 애쓸 것이다. 부모와 선생들은, 너희들이 지금은 페이스 북 게시물을 자랑스러워 하지만 언젠간 부끄러워 할 날이 올 것이라 조언한다. 하지만 세월이 그보다 더 흐르면, 자신의 글에 더 애정을 느끼게 될 것이고, 자손들은 귀한 가보로까지 여기게 될 것이다.

그렇긴 해도, 그 자손들은 그것들을 손으로 만질 수가 없다. 디지탈 기기를 손에 쥐고 서핑을 하면서 글을 만질 수 없음에 안타까워 할까? 내 아들은 5대 선조의 편지를 읽으며, 냄새도 맡고 생각지 못 했던 종이의 무게에 놀라기도 할 텐데.

내겐 그 편지와 같은 시기에 출판된 책들이 제법 있는데, 낡아서 곧 쓰레기가 될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조부모의 러브레터들은 두껍고 질긴 종이로 만들어져서 내 어릴 때 샀던 값싼 종이책들이 먼지가 될 때까지 변치 않을 것이다.

이번 주, ‘애플’은 디지탈 글을 보다 쉽게 읽게 해줄 “아이 패드(iPad)” 출시를 발표했다. 종이가 사라질 것이라 애석해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실은 디지탈 책도 충분히 우리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다. 나는 인터넷으로 한국에 관한 옛 영어책들을 무료로 보면서 상당히 즐긴다. 테제의 안토니 수사의 서강대학교 웹사이트에 그 책들의 링크가 많다: hompi.sogang.ac.kr/anthony/BooksKorea.htm

디지탈 판을 보면서도, 110년 전에 출판된 부서질 것 같은 책장들을 손에 쥔 채 손 때 묻은 갈색 책장을 손가락으로 넘기는 것 같은, 실감나는 경험을 한다. 정교하게 찍은 음식 사진에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할까?

내가 가장 즐기는 것은 한국의 옛문법과 사전이다. 당시 서양 출판인들은 한국어를 이해하고 기록하려고 무던히 애썼다. 언어학이 아직 과학으로 발전되지 않은 데다, 한국이 일본 통치 하에 있었으니, 그들이 출판한 책들은 부정확하고 불완전하다. 하지만 한 문화가 미지의 다른 문화를 만나 호감과 오해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생각한다면 훌륭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하버드 도서관에 있는, 1897년 제임스 게일의 ‘한영자전’도 그 중 하나이다. 그 사전은 글자 ‘ㅇ’ 로 시작된다. 그래서 첫 단어가 ‘아!’, ‘아야!’ 이다. 놀라고 무서운 것에 대한 감정 표현. 얼마나 한국적 단어인가? (‘아이고!’는 빠졌다). 의미가 있는 첫 단어로는 ‘아얌 (여자의 털 모자)’ 인데, 현대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1893년에 출판된 제임스 스캇의 ‘한국어 문법/문장집’을 보면, 아련하게 퇴색된 갈색 책장을 볼 수 있다. 디지탈 이미지이니 손상의 걱정 없이 그 감각적 갈색을 음미할 수 있다. 이 책엔 현대 문장집에는 없는 옛 형식 문장이 많다. 역사 드라마에서나 듣는 ‘먹사옵나이다’ 등이다. ‘아래 아’ 글자가 없어져서 활자화조차 어렵게 된 말이다. 라틴 문법에서 빌린 용어로 어색하게 쓰여진 이 작은 책을 손에 쥔1893년도의 초급 한국어 학생을 상상해본다. ‘김치 걸’로부터 한국어 온라인 비디오 레슨을 받는 1210년도의 학생과는 비교할 엄두도 안 난다.

100년 전 서양인들이 한국을 알려고 애썼던 것처럼, 7000 마일 멀리에서는 내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알려고 애썼다. 호기심, 정열 그리고 오해라기 보다는 몰이해 속에. 그들이 남긴 종이의 소중한 흔적은 우리에게 내려진 축복이라 하겠다.


케빈 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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