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바람 났던 2월

2010-03-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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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 백 호랑이의 2월은 한국인 우리에게 신나는 달이었다. 날마다 신문과 방송소식을 기다렸다. 세계지도를 쳐다보면 동아시아 대륙에 조그맣게 달라붙어 있는 한반도. 이념으로 허리가 잘린 불운의 대한민국. 미국에 돈을 빌려줄 만큼 경제성장을 했다며 큰소리치며 차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중국과 이웃하고 있다.

세계의 불경기 한파가 여전히 몰아치지만 동계 올림픽의 역사는 더욱 눈부시게 기록되었다. 출전준비를 하던 한 청년의 희생이 따랐지만 스포츠를 통해 세계인이 서로 존경하며 당당히 선의의 실력을 겨루는 행사이다. 인터넷과 중계방송을 통해 출전한 나라를 생각하며 선수들의 열정 속에 나도 푹 빠져버렸다.

메달을 받으면 애국자가 되고 연금수혜도 있으니 선수들의 대우도 탄탄하다. 그날의 컨디션과 운도 따르기에 예상대로 성과를 올리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귀국한 우리선수단을 오영식 화백(한국일보)은 그림으로 잘 풍자해 놓았다. ‘1919년 탄압’ 이라는 구호아래 한복을 입고 만세 부르는 유관순. ‘2010년 탄생’이라며 금메달의 피겨여왕을 축하하는 태극기를 든 김연아. 36년이나 지배당했던 아픔을 우린 잊을 수 없다. 심심하면 우리 동해의 작은 섬 독도를 자기나라 땅이라고 우기는 이웃나라 일본.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 그녀의 말처럼 운명적인 만남인가. 묘하게도 두 라이벌은 동갑내기다. 두 소녀가 그동안 갈고 닦아 온 테크닉이 궁금하여 내 손에 땀을 쥐게 했던 2월이었다.

동계 올림픽의 꽃들의 피날레인 피겨스케이트 경기.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들던 곡예사처럼 종합 예술의 아름다움을 한없이 발휘하던 남녀선수들. 아슬아슬한 빙판 위를 새처럼 나르는 그들을 보며 세상시름 다 내려놓고 나도 날아갔다.

피겨 여왕 연아가 입고 나오는 세련되고 환상적인 의상들. 나비처럼 나풀거리는 손끝 발끝 동작이며. 얼굴 표정 하나하나가 관중을 사로잡았다. 음악과 함께 청중도 숨을 죽였다. 완성 될 때까지 끈기 있게 연습하던 태도에 코치선생님 오서도 놀랬단다. 메달을 목에 걸고 차분하게 인터뷰하는 목소리며 말하는 억양까지도 매력이 넘쳤다.

까다로운 여 심판이 낮은 점수를 줄까했던 우려도 날려버렸다. “Here she is, Yuna Kim.이라고 소개하던 아나운서의 목소리도 환희로 벅차 있었다.
스무 살 그녀가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 국민모두가 울었다. 자랑스러운 대한의 딸이 일장기를 눌렀기 때문이다.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도 풀렸다. 애국가가 세계인 앞에 울려 퍼졌다. 오직 스케이팅연습을 위해 그동안 많이 희생했을 연아의 가족들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수년간의 별거를 마다 않고 두 딸을 길러낸 당찬 부부의 열성과 노력. 대단한 동생을 위해 하고픈 음악공부도 포기하고 진로를 바꾸어 간호대학을 졸업했다는 연아의 천사 언니 얼굴도. 3월의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친 후 우리피겨 여왕은 어떤 꿈을 설계할까? 지덕체를 갖춘 더욱 멋진 성인이 되기를 기원한다.


최미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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