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 뉴욕한인교사회 회장
숨겨진 보물을 찾고자 예술, 문화, 교육인이 한자리에 만나는 장소와 모임을 최근에 만들었다. 이 보물들의 얼과 향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예술인의 끈’이라는 단체를 설립한 것이다. 이 단체의 원래 목적은 한국어와 문화를 정규학교에 추진하는 도중 예술인이 함께 모여 있는 기관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하였고 지난 12월에 비영리 단체로 등록되었다. 누구나 숨겨진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밝게 웃는 사람,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는 사람, 친절을 베푸는 사람, 예쁜 감사카드를 보내는 사람, 전화를 해 조언과 희망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해도 화내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사람, 재미있는 유머로 상대방을 유쾌하게 만드는 재주꾼, 예쁜 컵받침을 손수 만들어서 수줍음을 타면서 건네주는 아름다운 이….이러한 숨겨진 보물들이 내 주변에는 많다.
지극히 평범한 것이 아름답고 지극히 순수한 사람이 아름답다. 나는 VIP라는 약자를 싫어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특별하면 얼마나 특별할까? 또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 감정이 얼마나 갈까?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 특별하다고 본다. 물론 다양성이 우리 인간을 아름다운 자연의 존재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눈길은 참으로 미끄럽고 위험했다. 나무 가지가 축 늘어진 채로 눈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길가에 쓰러져 있었다. 도로는 가는 곳마다 막혀 있었다. 나는 학교가 끝난 후 집을 향해 눈길을 뚫고 가는 데 애를 먹었다. 내 마음에는 나를 애타게 기다리는 나의 가족이 있었다.
지친 몸, 부르튼 입술, 타는 입술로 나는 흰 눈의 세상을 아름답게 감상하면서 내 딸이 창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나의 보금자리로 무사히 도착했다.
오늘 아침에는 예술인의 끈 모임을 더욱 더 아름답게 해주시는 도예가 선생님, 사모님과 통화를 했다. 연세가 지극히 있으신 이 부부는 참으로 아름다운 부부이다. 도예가 선생님은 열정과 사명감과 사랑을 가지고 흙으로 인생을 빚으시고, 그의 처는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극 정성으로 남편의 예술을 찬양하고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시는 아름다운 부부이다.
이 분들과 허드슨 강가로 산책을 간 적이 있었다. 겨울 새벽에 허드슨 강가를 보면서 우리는 모두 감사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감격스러웠다. 이 분들은 아낌없이 베푸는 분들이다. 언제나 먼저 “내가 뭐 해 가지고 갈 것 없나요?” 하고 물어봐주시는 베품의 부부. 부인이 남편을 바라보는 눈빛이 그려진다. 남편은 열심히 자신의 창작 세상에서 행복과 희열을 느끼며 창작에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이런 분들이야 말로 모두 다 “숨겨진 보물” 들이다. 나는 우리 학생들도 이런 눈으로 보고자 노력한다. 개개인 학생마다 특별하고 소중하다. 말썽꾸러기도 소중하고, 공부 잘 하는 아이도 소중하다. 수업시간에 소근 소근 잡담을 하는 친구들도 소중하고, 매일 내 교실에만 들어오자마자 화장실에 가겠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학생들도 소중하다.
오늘 또 한명의 소중한 학생을 발견했다. 수업 중이나 점심시간에도 끊임없이 찾아와 자신의 과학 프로젝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며 질문을 하고,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끈질기게 나를 “귀찮게” 했다. 나는 이 학생의 끈기에 놀랐고 한편 기특했다. 자신의 과제에 애착을 두고 어떻게 해서라고 나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이 끈질긴 학생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도 점심시간에 이 학생이 요청하는 질문을 연구하여 열심히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또 질문이 있으면 아무때나 찾아오라고 허락의 문을 열어 주었다. 이 학생이야 말로 숨겨진 보물이었고 그 보물을 내가 찾았다.
귀여운 2학년 한인 남학생이 있다. 나는 이 학생의 과학 선생님도 아니고 한국어 선생님도 아니다. 그런데 이 귀여운 2학년의 남학생은 나만 보면 “안녕하세요?”하고 꾸뻑 인사를 한다. 맨 처음 인사 받을 때부터 무척이나 귀엽다고 생각했다. 이 아이는 참 성숙한 2학년 학생이다. 퇴교 시간에 여동생을 꼭 데리고 집으로 둘이서 걸어가는 것 같았다. 하루는 수위 아저씨가 나에게 말하길 “이 어린 아이가 혼자서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가는데, 이래도 되느냐고” 걱정스러운 말씀을 하셨다. 나도 걱정이 된다. 하지만 이 학생의 사정은 어떤 것일까? 믿음직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혼자 집으로 가긴 너무 어린것 아닌가 하면서 걱정이 된다.
하지만 이 학생이 나에게 한국어로 인사를 할 때는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다. 오늘은 이 학생에게 맛있는 사탕과 복주머니 가지고 그가 있는 과학반으로 찾아가서 주었다. 눈이 동그랗게 놀란 표정으로 덥석 사탕이 담긴 복주머니를 받았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자신을 너무나 특별하게 느낀 것 같았다. 나는 또 하나의 숨겨진 보물을 찾았다. 비록 어린 나이에 가장 노릇을 하는 꼬마 가장의 한국어로 나를 반겨주는 “꼬마 아빠”를 찾아냈다.폭설이 내리는 이 밤에 센트럴 파크에서는 한 사람이 눈 쌓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바람에 목숨을 잃은 이 날, 나는 보물단지 같은 감사의 바구니에 내 학생들, 아름다운 노년의 부부, 그리고 내 가족을 그리며 흐뭇하고 벅찬 마음을 어떻게 할 줄 모르며 나는 창밖을 내다본다. 아직도 무거운 휜눈이 하늘나라에서 훨훨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