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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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2010-03-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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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이 끝나고 모든 물자가 부족할 때였다. 당시 모두 사는 게 어려울 때 책읽기에 재미가 붙어 동내 대본업 하는 구멍가게에서 소설을 빌려다가 밤이 새게 읽었다. 이렇게 하여 내가 평생 즐기게 되는 책 읽는 습관이 시작이 되었는가 보다. 전기 공급이 일정치 않아 남포라고 불리던 석유램프를 키고 밤을 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책과 더불어 새로운 경지를 발견 하며 나름대로 나의 꿈을 펴곤 했다. 어렵게 살던 나는 어떻게 하여 돈이 생기면 청계천 6가 헌 책방에 가서 남이 쓰던 책을 헐값에 사든가 재수 좋으면 새 책도 싸게 사는 수도 있었다. 지금도 그때 구입한 민중서관이 발행한 영한사전이 내 서가에 자리 잡고 있다. 반세기의 때 묻은 사전을 지금도 펴 볼 때가 있다.

내가 살아온 역사를 말해 주는듯 한다. 어쩌면 우리 집 가보 제 1호일 수도 있다. 여러 군데 떠돌아다니는 데 항상 이 책은 나와 함께 하고 내 영어 공부의 앞잡이가 되어 주었다. 이 글을 쓰며 겉장 안을 보니 1958년에 샀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52년 전에 산 셈이다. 약 2000여권 있는 내 서가에서 제일 오래된 책이다. 내 서가에는 책에 대한 남다른 나의 집착 때문에 지금도 다 읽지 못해도 매달 사는 여러 권의 책들로 가득 차 있다.


미국은 워낙 풍요한 나라이기에 책 사는 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터였다. 몇 년 전 늦게 시작한 학위 공부 하며 교과서가 그리 비싼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용 교재가 한권에 보통 200여 달러 하고 참고서까지 하면 한 과목에 어떤 때는 400여 달러 하는 게 보통이기도 했다.

주위에서 같이 공부 하던 학생 들은 과목을 마치면 책을 팔기도 했는데 나는 그대로 서가에 비치하고 내 정열과 함께한 책들을 대견스럽게 보기도 한다.

이제 대학에서 가르치니 학생들의 고충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어떤 학생들은 동급생들 한테 빌려서 카피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숙제를 제때에 제출 못한다. 내가 알고 있는 국제판을 소개 하며 인터넷을 통하여 싸게 사는 법도 학생들한테 알려 주기도 한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사용 하는 국제판은 소프트 카버로 된 것이외에 내용은 같은데 값은 하드카버에 1/3도 되지 않는다.

근래에 대형 교과서 출판사 “매그로 힐” 이나 “신게이트” 에서 대본업을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빌려준다. 정가에 절반도 안 되는 값이다. 과목이 끝나면 반환하거나 제 값주고 사기도 한다. 물론 험하게 쓴 책은 반환 할 수 없고 제 값 다주고 구입 해야 한다.

이렇게 빌려보며 유익한 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출판사 웹사이트에서 책 챕터마다 온라인으로 받아 볼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 참고서도 이용 할 수 있어 학생들한테 많은 도움을 준다.

책을 빌려 주는 사업은 교과서뿐만 아니고 일반 서적이 소개되기도 한다. 20달러 이상 되는 책을 값 절반 이하에 빌려준다는 빌보드를 얼마 전 오렌지카운티 비행장에서 보았다. 이제 교과서 이외에 일반 서적 시장에도 대본업이 소개 된다.

이렇게 책과 가까이 한다는 것이 참 좋은 일이다. 10여년 전에 독서 클럽을 시작하여 우리 글로 된 책 200여권 읽을 기회도 얻고 독서 애호가들과 함께 교분도 쌓곤 하였다. 책은 우리에게 평생 벗이 되고 길잡이가 된다고 혼자 되새긴다.

에라스무스가 오래전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돈이 좀 생기면 책을 사고 그리고 남으면 음식을 사게 된다”. 책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주는 뜻이 크다.


이종혁 /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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