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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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늙는다는 것

2010-02-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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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사무실을 옮겼다. 딸과 사위가 비즈니스를 이전하면서 내 사무실을 한 켠에 마련해줬다. 임대료를 내지 않아도 돼 경비부담을 덜었다.

게다가 사무실 환경에 맞춰 책상이며 컴퓨터며 집기도 새로 들여놔 분위기가 전보다 한결 오붓해졌다. 회의실과 작은 방이 2개가 딸려있어 풀타임 사무장과 함께 지내기에 알맞은 규모다.

처음엔 ‘내 나이도 70이 넘었는데’ 하며 쉴까도 생각해 봤다. 평생 직장(간호사)과 사업, 그리고 틈나는 대로 봉사활동을 해온 나로서는 ‘쉴 때도 됐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했다.


그런데 달라진 사무실 분위기를 보고는 마음이 바뀌었다. ‘인생은 70부터’라는 말을 떠올리며 움츠려 들려는 나를 다시 추슬러 세웠다. 그러던 참에 한국에서 지인 한분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사무실 이전을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삶의 새로운 지표로 ‘웰 에이징’(well-aging)을 적극 권유하는 내용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선 ‘웰빙’이 열풍처럼 번지고 있으나 우리 나이에는 ‘건강하게 잘 늙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나이 먹었다고 집에서 한탄하고 외로워하지 말고 ‘젊은 언니’처럼 적극적으로 살라는 것이어서 공감을 하게 됐다.

이메일 내용에 따르면 자연의 섭리인 노화에 순응하면서도 보람있는 활동으로 건강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웰 에이징’이다. 앞으로 ‘웰 에이징’이 웰빙 못지않게 조명을 받게 된다며 실천에 옮겨보라는 것이다.

사실 요즘은 의료기술이 발달되고 환경이 좋아져서 누구나 장수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9988’이라는 조크도 이래서 생겨난 게 아닌가 싶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농담을 이젠 덕담처럼 주고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99세 보다는 아무래도 ‘88’에 더 방점이 찍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오래 사는 것도 ‘팔팔’하고 건강할 때야 비로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은퇴이후 여유 있는 생활을 위해 자금계획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언가 건전하게 몰입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보람과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일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일 것이다.

인생은 흔히 장년기와 그 이후 노년의 삶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말년이 좋아야 잘 살았다’는 우리말도 ‘웰 에이징’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나 다름없겠다.


이민사회의 특성상 ‘웰 에이징’을 실천하기 위해선 네트워킹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함께 늙어갈 수 있는 동반자 그룹, 곧 폭넓은 교우,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서로를 보듬고 격려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웰 에이징’, 어떻게 잘 늙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각자 한번쯤 노후설계도를 그려보자. 내면의 평화로움과 건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기 위한 ‘웰 에이징’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캠페인이다.


유분자 / 소망소사이어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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