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떤 오해

2010-02-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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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보면 사소한 오해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행동이 불편해 질 때가 있다.

미국사람들은 사무실에서 중요한 서류나 물건을 전달할 때 당사자가 자리에 없으면 어수선한 책상 위나 서류함보다 더 확실한 방법으로 의자 위를 선호하는 일이 많다. 대개 사람들은 자리에 앉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의자를 한번 힐끗 보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 날도 평소와 같이 점심 먹고 운동 삼아 바깥에서 좀 걷다가 돌아와 일을 하고 있었다. 얼마가 지난 후 무심결에 의자 위 엉덩이 밑에 손을 넣었다가 눅진한 감촉에 움찔해서 보니, 사탕이 껌같이 녹아 의자와 바지에 눌어붙어 있었다.


겉으로는 웃으며 아닌 척 했지만 시종 경직된 모습으로 야무지게 붙어 있는 사탕을 떼어 내느라 온갖 부산을 떤 모양이었다. 옆자리의 마타가 보기 안타까웠는지 아마 누군가가 선의로 사탕을 의자 위에 두고 간 것 같은데 캔디 포장이 의자 천 색깔하고 비슷해, 내가 미쳐보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서류건 물건이건 중요한 건 죄다 의자 위에 두는 일이 많으니 일부러 그러려고 한 것 같진 않다며 오해를 풀라고 했으나 마음이 시원하게 풀리지 않았다.

소동을 전해 들었는지 다음날 아침 이웃 부서의 샬린이 내게 와서 다짜고짜로 어제는 참 미안했다고 했다. 자기는 작은 캔디 하나를 전해 주려고 했으나 내가 자리를 비우고 없어 의자 위에 놓고 갔는데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며 연신 ‘아이 앰 쏘리’를 쏟아 내었다. 사정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호들갑을 떨었다는 생각이 드니 한편으로는 쑥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그러면서 그녀는 플로리다의 한 시골 동네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며 오해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플로리다에 사는 한 할머니가 샤핑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와보니 네 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자신의 승용차를 집어타고 떠날 차비를 하고 있었단다. 소스라친 할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샤핑백을 내동댕이치고는 호신용 권총을 꺼내 들고 목청을 다해 소리쳤다.

“이건 진짜 권총이다. 당장 내 차에서 내려 사라져라!

할머니의 고함소리에 혼비백산한 청년들은 앞뒤 돌아볼 겨를도 없이 차에서 내려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할머니는 겨우 정신을 차려 어지럽게 흩어진 물건들을 샤핑백에 주워 담고는 운전석에 올랐는데 손이 떨려서 자동차 시동을 걸 수가 없었다. 몇 번을 시도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그제야 할머니는 ‘아뿔싸’ 하며 뭔가 떠올랐다.


서둘러 차에서 내린 할머니는 차량 4~5대 아래쪽에 주차되어 있는 자신의 차를 발견하고는 곧 바로 경찰서를 향해 달려갔다. 전후사정을 들은 경찰관은 허리가 꺾일 정도로 박장대소를 했다.

경찰관이 가리키는 사무실 한 구석에서는 조금 전의 청년들이 창백한 얼굴로 자신들이 백주에 당한 차량탈취범 인상착의에 대해 열심히 진술하고 있었다.
“곱슬머리에 안경을 쓴 하얀 피부의 한 미친 할머니가 권총을 들이대고는 다짜고짜로…

물론 할머니에게는 아무런 혐의도 주어지지 않았다지만, 오해도 이쯤 되면 정말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임학준 / LA 카운티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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