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 뉴욕한인교사회 회장
나는 “저는 1.5세에요…” 하는 핑계를 죽 먹듯이 잘 쓴다. 이 핑계만 대면 “무엇이든지 용납되는 줄 아는 착각”속에서 산다. 이것을 전제로 내가 느끼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나의 의견을 써 내려갔다. 나는 사람들과 글, 전화 통화 그리고 만나서도 많은 대화를 나눈다. 이 덕에 우리 쌍둥이 아이
들은 엄마 등쌀에 못 이겨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익숙해 졌다. 나를 지지해주는 남편은 내 극성과 열정에 그냥 그러려니 한다. 한국어 추진, 개설, 그리고 유지와 관해 여러 한인 학부모, 타 민족의 교사, 교장, 교육감, 한인 교사 등등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리고 예전에도 교육계에 있으면서 학부모나 교육자들 틈에서 항상 존재했고 다양하고 유익한 대화도 많이 나눈다. 이 속에서 얻어낸 지식, 최근의 동향, 그리고 지혜를 바탕으로 해 나의 의견을 나누고 싶다.
예전에도 느끼고 경험한 바 있지만, ‘한국어 추진, 개설, 유지’ 일을 하면서 더욱 실감하는 몇 가지가 있다. 1.한인동포 정체성 병: 이민1세, 1.5세, 2세를 막론하고 많은 한인들이 앓고 있는 병이 있다. 이 병의 이름으로 ‘정체성-less 병’이라는 단어를 제안하고 싶다. 새벽에 운전을 해 뉴욕에 있는 학교로 출근을 한다. 가끔 한국어 라디오를 듣는다. 어느 남자가 라디오에 나와 한국어 교육 CD/DVD를 선전하는 내용이다. 내 친정 엄마도 내게 이 CD를 사서 한국어를 학생들에게 “쉽게 빨리” 가르쳐보면 어떤가를 물었다. 나는 버릇없이 엄마를 향해 그냥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CD/DVD를 광고하는 분이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 한 것도 같은데 나는 이 분과는 달리 실제로 경험하고, 듣고, 느끼고, 확인하고, 또 연구한 결과를 말하고 싶다. 나의 원래 학문적 배경은 사회학이다. 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해 이런 조사나 ‘평가’ 하는 데는 매우 익숙하고 편하다. 하지만 교육자 나름대로의 경험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평가하는 부분도 많다. ‘정체성 병’을 앓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한다.
a. 나는 한국인이 아니야. 나는 한국어는 물론 할 필요도 없지만 우리아이들이나 후손에겐 절대로 알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시간과 에너지 낭비야!
b.미국에 살기 때문에 나는 한인 친구보다 외국인 친구를 선호하고 김치냄새 나는 한국인 친구랑 안놀고 싶다. 한국인은 모두 무식하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것 같다.
c.한인들은 만나서 늘 다른 사람 흉만 보고 자기 잘난척만 해서 나는 한인들에게 거부반응을 느끼고 외국인 친구가 많다. 그 친구들에게 한인친구는 나 밖에 없다.
d.나는 미국인이야. 그러기에 그냥 미국사람들과 어울리고 우리 아이들도 미국인이니 미국인 친구와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한인교회나 절에는 일주일에 한번쯤은 가고 싶다. 교회나 절에 가도 끼리끼리 어울리고 싸우는 모습에 나는 친교시간에 그냥 집에 와 버린다…
e.나는 저 ‘한인들과’ 좀 달라. 그리고 좀 그들의 시선을 피해 나만의 삶을 살고 싶다. 어떤 때는 가면을 쓰고 나가고 싶다. 한국인의 얼굴이 들어내지 않는 가면 말이다…
f.나는 왜 한국어를 굳이 정규 학교에서 가르치려고 하는지…도대체 모르겠어. 영어도 못 하는 한국인 선생이 와서 우리아이들 망신시킬까 봐 두렵고 영어도 못 하면서 집에서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 살림이나 잘 할 것이지 왜 뛰쳐나와 한국어를 가르치려고 아우성을 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g.나는 우리 학교 선생들이 우리 한인 아이들만 모아 놓고 한국어반을 무슨 특수 교육같이 취급하려고 하는 것이 싫다. 자연스럽게 우리아이들이 미국 아이들 사이에 놀고 자라고 미국땅에서 잘 성장했으면 한다. 요즘은 다 중국어나 일어를 배운다고 하는데 나도 세계화 시대에 우리아이들에게 제일 유익한 언어를 배우게 해야지. 한국어 따위는 왜 배워? 정말 쓸모없는 언어인데. 한인 교사회인지 하는 단체는 왜 이리 난리 법석을 떠는 거야? 창피해 이렇게 흔히 하는 대화, 발언, 의견을 많이 듣는다.
여기서 굳이 설명을 안 해도 왜 많은 한국인들이 “정체성-less 병”을 앓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1.우리 민족의 역사 탓이다: 매번 침략만 받고 살아온 역사 속에서 일부 한인들은 피해의식에 빠져 있다.
2.우리 1.5 세나 2세는 이렇게 “피해의식 속에 파 묻친” 부모 밑에서 자라서 빨리 또 특별히 “미국인이” 되길 갈망한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의 언어는 아마 3세 까지 이어지기 힘들 것이다.
3.우리 민족은 같은 동포들을 죽이고 증오하고 이념으로 인해 삶과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한국전쟁을 격은 동포이다. 아직도 세계에서 같은 피, 문화, 언어 그리고 조상을 가진 형제자매끼리 38선이라는 벽에 총을 들이대는 민족은 우리 한국인뿐이다. 그리하여 이런 “정체성 병” 을 앓고 있을 것 같다.
4.우리민족은 강대국에겐 꼼짝 못하고 약한 동포끼리는 사기 치기 바쁜 민족이다. 이런 피가 흐른다. 어쩔 수 없다.
핑계 없는 무덤이 어디 있으랴. 이처럼 역사탓, 전쟁탓, 유전탓, 이민온 탓…을 하자보면 끝이 없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좀 정신을 차려 우리의 “정체성 병”을 치유하는 길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