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육 알아보기 - 배려의 노력
2010-02-15 (월)
대학교 때 전철을 타고 가며 반대편에 앉아 있는 친구와 손짓으로 수다를 떨곤했다.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수화를 연습 삼아 어디서든 열심히 써보는 것이었다. 주변사람들은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신기해하며 힐끔힐끔 쳐다보곤 했는데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더 극성스럽게 수화로 수다를 떨다가 내릴 역에 도착하면 “내리자”하고 말을 해 주변사람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드는 것이 재미있기까지 했다. 청각장애를 가진 친구도 없고 주변에 수화를 쓰는 사람도 없어 크게 사용할 기회는 없었지만 언젠가 한번이라도 올지 모르는 기회를 위해 열심히 연습했고 손짓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 열심히 배워놓은 것이었다.
지금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지만 사고로 팔과 다리가 절단되어 몸통만 병실에 눕혀져 있는 군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TV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그는 화상도 심해 얼굴에 망을 씌여놓아 앞을 볼 수도 없었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는 낮과 밤도 구별을 못했고 사고 후 얼마나 많은 날이 지났는지도 몰랐으며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알지 못해 안타까워했다. 간호사의 손길을 느낄 때마다 마구 답답함을 호소해 보았으나 그것은 스스로 내면의 외침일 뿐 어느 누구도 그의 외침을 듣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시도를 하다가 마침내 머리로 침대를 두드리는 방법을 찾게 되었고 군대에서 배운 모리스 코드로 침대를 두드려 외부와의 대화를 하게 되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은 너무도 큰 자극으로 다가왔다. 나는 뚜뚜대는 소리만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되어 모리스 부호를 열심히 배워 아마추어 무선사 자격증을 획득하게 되었다.
우리 대학에는 스패니시 학생들이 50% 정도가 넘는다. 당연히 그들의 영어실력은 모국어 수준이고 가끔 액센트가 있고 언어실력이 뒤지는 학생이라 해도 영어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대화를 생각해 볼 필요가 없다. 하지만 오랜 시간 같이 생활을 하며 그들의 문화와 사고에 관심이 쏠렸고 더욱 가까이 알고 싶은 생각이 들어 드디어 그들의 언어를 스스로 배워보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좀 더 배려하기 위해 먼저 문화의 기초가 되는 그들의 언어를 배우겠다는 것은 그들에 대한 무한한 나의 관심과 존경의 표현인 것이다.
언어를 배우는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언어는 문법과 소리와 뜻을 가진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수화와 같은 것을 말한다. 모리스부호는 한 언어를 담아내는 도구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언어는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과의 의사소통을 할 때 의미가 있고 중요한 것이 된다. 내가 여러 가지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언어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 언어로 인해 얻게 되는 폭넓은 인간관계를 위해서다. 바로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잠시 잠깐의 관심보다는 진심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자 하는 배려심으로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같은 언어를 쓴다 해도 언어로 담아내는 생각과 기대가 서로 다르다면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다. 인간관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자녀와 부모 간의 관계이다. 어른들은 자녀들에게 공동으로 사용하는 언어로 대화를 했다고 해도 그들의 생각과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일방적인 대화를 한다면 같은 언어를 쓴다해도 인간관계 형성과 유지에는 어려움이 생긴다. 그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와 생각을 배우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장애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끝없이 장애인이 우리와 같은 행동을 하도록 요구하고 우리와 같은 수준의 언어로 대화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들의 행동에 눈을 맞추려는 노력은 얼마만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도와주고 배려하려면 잠시의 여유만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적극적으로 그들과의 의사소통 방법을 배우고 연습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김효선 교수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