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 책임감 강조도 교육
사회생활 성공 여부와 직결
LA에서 좀 떨어진 부촌에서 직업소개소를 경영하는 짐으로부터 들은 얘기이다.
직원 3명을 데리고 화이트칼러 사무직에서 부터 불러 칼러노동직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직업을 알선하는 것을 15년째 직업으로 삼아온 짐은 그동안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그 지역에서 꽤 잘 알려진 직업알선 전문가가 되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기업체에 취직을 해서 샐러리맨으로 10년 가까이 일하다가, 아무래도 자기 비즈니스를 가져보자고 시작한 것이 바로 직업 소개소였다. 그리고 지난 15년 동안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을 만큼,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한다고 했다.
짐은 15년 동안 직업을 찾는 구직자와 직원을 찾는 고용주의 상호 요구조건을 만족시켜서, 취업을 성사시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생생하게 체험했다. 더욱이 요즘처럼 불경기 상태에서는 직업 소개소 운영하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했다.
실업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구직자들의 수가 고용자의 수보다 훨씬 많은 것이 첫째 문제이고, 두 번째로는 고용자들과 구직자들의 기대치를 조절하기가 예전보다 더 어려워진 것도 문제가 되었다. 고용자 측에서는 좋은 노동력을 싼 값으로 얻으려고 하는 반면에, 구직자들은 실직 이전 임금에 비교해서 너무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보수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어서 양쪽의 요구를 절충, 성사시키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정작 취업시장 회복에 근본적인 방해물이 되고 있는 점은 바로 직업을 구하는 사람들의 해이한 정신상태라는 것이 짐의 지적이다. 어렵게 얻은 직업을 소중히 여기고 그 직업에서 요구하는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한다는 책임감이 없는 젊은이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 취업시장 회복을 더디게 한다고 했다.
가장 흔히 일어나는 무책임한 행동은 바로 근무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해야 하는 직업에서, 8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 나타나거나, 5시 이전에 사라지는 무책임한 근무태도 때문에 고용관계가 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어느 해인가 30대의 젊은 남자를 그 지역에 있는 중학교에 청소관리인으로 소개한 적이 있었다. 이력서를 보니, 직업을 자주 바꾼 것이 결점으로 보이긴 했지만, 대과가 없었고, 인터뷰를 해보니 인상도 좋고 성격도 쾌활한 것 같아서 소개를 했고 성사됐다.
일을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난 다음에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당신이 소개한 사람이 사흘째 결근을 하고, 연락도 안 되니 어찌된 셈이냐는 질문이었다. 난감하기는 짐도 마찬가지였다. 유일한 해결방법은 월급날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월급날이 되자 이 젊은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한 얼굴로 사무실에 나타났다. 혹시 그동안 위급한 상황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 젊은이는 친구 집 핼로윈 파티에 갔다가 이왕에 간 김에 3, 4일 더 놀다 오기로 했다는 태연한 대답이었다.
짐의 사무실이 있는 지역은 앞서 말한 대로 부촌인데다가 주민들 중 노년층이 많다. 자연히 집에 와서 노인들을 돌보고, 가사를 도와주는 일의 수요가 많은 편이다. 지난 15년 동안 수많은 가정에 수많은 가사보조원들을 소개해주었다. 그중에는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착실하게 맡은 일을 잘해서 고용인, 피고용인 양쪽이 모두 만족해 하는 성공케이스도 있다.
반면에 위의 청소관리인처럼 지각과 결근을 예사로 해서 단시일에 고용관계가 해체되는 경우도 많았다.
정부에서 나오는 실직수당이나 기타 보조금에 의존해서 살아온 젊은이들이 많은 것도 취업시장의 활성화를 막고 있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했다.
오랜 수고 끝에 직업을 소개해 주면 첫 번째 질문이 보수가 얼마냐는 것이고, 보수가 기대에 미치지 않으면 그냥 정부 보조금을 받는 것이 낫다면서 사무실을 나가버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짐을 기운 빠지게 하는 일이었다.
카운슬러로 재직 때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추천서를 써 줄 때에 나는 우선 이 학생이 책임감이 있는 학생이냐 아니냐를 판단해야 했다.
시간에 맞추어 주어진 의무를 착실하게 완수한다는 책임감이 없는 학생이 대학에 진학해서 제대로 힘든 과업을 성공적으로 이행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학생들의 책임감 유무를 알아보기 위한 참고자료로 나는 지난 4년 동안의 성적과 출결상태를 면밀하게 검토했다.
성적이 좋은 것과 책임감이 투철하다는 것이 동일한 것이 아닐 수는 있어도, 대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그만큼 책임감이 크다고 보아도 아주 틀린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삶은 끊임없는 천재와 지변으로 인한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다. 아무리 피할 수 없는 천재지변을 당했다 해도, 직업의 종류와 직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맡은 바 책임을 신속, 충실하게 이행한다면 그렇지 못한 세상에서보다 고통의 정도와 기간이 훨씬 짧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주어진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지도자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는가를 기억하고 있다. 안정되고 질서 잡힌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평소에 누구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것이 필수조건이며, 이런 책임감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교육의 일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노란 비옷을 입고 폭우 속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주민들을 도와주는 경찰관들과 소방관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나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김순진 <교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