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에게는 두 명의 엄마가 있었다. 한분은 나를 태어나서부터 키워주신 늙은 엄마로 내가 다섯 살 되던 해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고, 그 후 난 훨씬 젊은 엄마 집으로 와서 옮겨와 살게 되었다.
좀 서먹하긴 했지만 우리 집에 자주 드나드시던 분이라 낯도 익지만 무엇보다도 어린 내 눈에도 검고 숯이 많은 머리로 지은 쪽의 크기가 늙은 엄마의 것보다 2-3배나 되는 건강함에 의지가 되었고 키도 크고 건장한 젊은 엄마의 목소리는 나에게 순종을 받아낼 정도로 또랑또랑 했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는 이상하고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돌아가진 엄마와는 밖에 나가면 늘 습관처럼 겪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늙은 엄마와 어린 딸 둘이 사는 단출한 우리가정은 엄마가 육순이 훨씬 넘으신 나이였고 난 겨우 너서살 난 철없는 딸이었다. 그런데 밖에서 “엄마”라고 부르는 나를 사람들이 늘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리곤 우리 엄마에게 뭐라고 물었고 엄마는 항상 “예, 내가 난 친딸이라우”하며 크게 웃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히 사람들은 엄마의 얼굴에 묻어나는 세월의 가치와 어린 딸의 관계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친 딸이려면 엄마는 나를 족히 62세쯤에 낳은 셈이 될 테니 말이다.
어려서 소아마비와 잔병치레로 늘 골골하던 나를 위해 젊은 엄마는 연세가 좀 있으시고 딸린 자식이 없어 나에게 전념하실 수 있는 분을 찾아 병원 옆에 집을 얻어 함께 살도록 하신 것이었다. 그리고 젊은 엄마는 한 달에 한 번씩 선물을 가득 들고 찾아와 나와 함께 놀아주기도 하고 한 달 생활비와 용돈을 주곤 하셨던 것이다.
나는 젊은 엄마 집으로 들어와 극성스러운 4명의 오빠와 두 명의 언니가 있는 대가족 속에서 그동안 혼자 독차지 하던 엄마의 곁을 찾을 수 없어 크게 앓기도 했고 적응하는 기간에 새롭게 내성적이고 소심해지는 성격을 은연중에 배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마음 속 깊이 나에게는 알지 못할 수줍음과 수치심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꺼낼 때 주변에 반응을 보고는 이내 수치심이 치솟아 오르는 것이다.
그 마음은 무엇일까 하고 늘 스스로 캐려고 노력을 했었다. 커가며 자신감도 늘고 사회성도 높아지고 밝은 성격으로 비춰지는 나의 외적 모습과는 달리 늘 말을 하고나면 겪어야 하는 벌거숭이가 된 듯한 느낌을 떨쳐내기 위해서 늘 노력해야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도로시 놀트 (Dorothy Nolte, 1954)의 시를 접하며 그 마음이 어디서 온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아이들이 이렇게 생활 중에 배운다고 시에서 말하고 있다.
“꾸지람 속에 자란 아이, 비난하는 것 배우며,
미움 받으며 자란 아이, 싸움질만 하게 되고,
놀림 당하며 자란 아이, 수줍음만 타게 된다.
관용 속에서 키운 아이, 참을성을 알게 되며,
격려 받으며 자란 아이, 자신감을 갖게 되고,
칭찬 들으며 자란 아이, 감사할 줄 알게 된다.
공정한 대접 속에서 자란 아이, 올바름을 배우게 되며,
인정 속에 자란 아이, 믿음을 갖게 되고,
두둔 받으며 자란 아이, 자신에 긍지를 느끼며,
인정과 우정 속에서 자란 아이, 온 세상에 사랑이 충만함을 알게 된다.”
이렇듯 아이들은 자기들이 살아온 삶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내면의 힘. 그것은 바로 부모가 가정의 분위기를 어떻게 마련해주고 자녀와의 대화를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있는 것이고 그것이 학교에서 배운 학문이나 기술을 자신감으로 정의롭게 펼칠 수 있으며 삶의 기본적인 행복한 성격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힘이라는 것이다. 그 내면의 힘이 없으면 아무 많은 지식과 명예와 권력이 주어졌다 해도 늘 불안하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공부하라는 재촉의 한마디나 꾸지람 한마디를 던지기 위해 긍정적인 힘을 키워줄 수 있는 관용과 격려, 칭찬과 인정의 말을 다섯 마디를 던지도록 하고 자녀를 공정하게 대하고 있는가 부모 스스로의 언행을 늘 돌아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