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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 아이티의 천재지변과 우리들

2010-0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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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역사에 시달리는 빈국
한인사회 성금 큰 도움 될 것

지금 Caribbean해의 Haiti 공화국의 수도 Port-au-Prince(포르토프랭스)에서는 그 나라 역사상 최대의 천재재앙으로 총 2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 밑에 깔려 가히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다. Port-au-Prince는 Miami에서 비행기로 약 한 시간거리(750마일)이다. 새해 벽두에 이러한 천재지변을 맞은 Haiti 공화국은 어떠한 나라이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살펴보고자한다.


Haiti는 컬럼버스가 1492년 12월5일에 발견, 라틴 국가 중에서 최초로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던 Hispaniola섬의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총 면적 10만714평방마일로써 남북한을 합한 한국 면적(8만6,500평방마일)보다 조금 큰 나라이다. 도미니칸공화국(Dominican Republic)과 인접해 있다.

2009년 현재 인구 약 1,000만명의 작은 나라로서, 망고와 커피를 주로 수출하며, 설탕, 담배, 천연 쪽빛 물감(indigo), 약재 등을 생산한다. 수십년 간에 걸친 치산치수 정책의 부재로 마치 1960년대 말의 한국처럼 사람들이 땔감용으로 나무를 무작위로 벌목한 결과, 전체 산의 3/4이상이 벌거숭이이다. 개인당 연간 국민 총 생산액은 790달러,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이다. 국민 대다수가 하루에 2달러로 생활해 나간다.

프랑스식 교육제도를 모방하고 있으나, 문맹 퇴치율은 불과 50%에 불과하며(한국은 98%), 불어와 Haitian Creole(18세기의 불어와 아프리카어, 원주민어, 스페인어 등이 혼합된 언어)이 공용어다. Haiti를 영어권에서는 ‘헤이티’, 불어로는 ‘아이티’라고 부른다. ‘h’가 불어에서는 묵음이기 때문이다.

1697년 스페인과 프랑스간의 알력을 매듭지은 Ryswick 조약 체결 후, Hispaniola섬의 서쪽만 프랑스령이 되어 지금의 Haiti 공화국이 되었고, 동쪽은 스페인령으로 그냥 남아 있게 되어 컬럼버스의 아들과 그 후예가 다스렸던 지금의 Dominican Republic이 되었다. 이후 프랑스인들이 대거 유입했고, 싼 노동력의 필요로 아프리카로부터 흑인 노예들을 들여왔으며, 이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Code Noire’(흑인 법전)를 만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들 흑인들의 반항으로 미국이 나폴레옹으로부터 루이지애나 지역을 사들인 다음 해인 1804년, 라틴국가로서는 최초로 독립국가가 되었다. 특기할 것은 프랑스 혁명(1789년)의 영향으로, 흑인들의 반항에 의하여 독립하게 되었으며, 최초로 흑인이 통치하는 라틴 아메리카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불어를 사용하는 독립국가가 되었다는 점이다. 1804년 독립선언 이후, 지난 200년 동안 최근까지 무려 32회의 쿠데타가 일어났던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은 1915년 Woodrow Wilson 대통령 때에 해병대를 투입하여 점령, 제헌국가가 되도록 도왔으나, 1934년 Roosevelt 대통령 때에 철수했다. 그 후 아이티 정부는 헌법을 폐지하고, 국토 방위대를 설치하여 통치해 왔다. 1957~1986까지 Duvalier 부자 독재자(‘Papa Doc’ ‘Baby Doc’)가 사설군대와 공포 정치로 다스리다 물러나자, 1987년에 다시 제헌국가가 되었다.

1991년 클린턴 행정부 시절 가톨릭 신부 출신의 J. B. Aristide가 국민 투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취임 후 6개월 만에 불신임 투표로 물러났다가 1994년 클린턴 행정부의 도움으로 다시 Haiti로 돌아가 대통령 임기를 마쳤다.


현 대통령 Rene Preval은 Aristide 대통령 밑에서 수상을 지냈던 사람으로 1995~2000년 동안 대통령을 지냈으며, 2006년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Haiti는 다수 정당제의 상하 양원을 둔 의회정치 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나 대통령은 직선제이며, 국무총리는 의회에서 다수당 출신을 선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주지하다시피 아이티인들은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노예의 후손들이 대부분으로 전체 국민의 95%이며, 나머지 5%는 혼혈인종이나 유럽계 백인들이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관계로 80%가 가톨릭, 16%는 신교이지만, 인구의 절반은 아프리카의 원시 종교인 부두교(Voodoo)도 같이 믿는다.

국가 예산의 30~ 40%를 해외원조로 충당한다. 1993~2003년까지 총 40억달러의 외국의 원조 중 미국이 15억달러를 지원했다.

신혼여행지였던 Haiti의 수도 Port-au-Prince에 7.0도의 지진이 일어나자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진 피해복구 사업에 앞장서고 있다.(이 도시의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1만명 이상의 미국 실업인이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요청으로 유엔 특사 자격으로 일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1만여명의 미군을 파견했고, 이들은 치안 유지 및 매몰된 실종자 수색과 비행장과 도로 건설에 투입되고 있다.

보스턴의 민간인 선박 클리닉은 해상 의료실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렇게 미국은 “잘 사는 좋은 이웃”으로서의 넉넉함을 잘 발휘하고 있다. 지진 복구사업에 미국인의 대거 참여가 보장되는 일이기도 하다.

이번 Haitian 지진은 자연의 횡포에 어처구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의 나약함을 새삼 확인시켜 줬다. 우리 모두의 연민을 일깨워 주는 처참한 현상이다.

독일 시인 Schiller의 시 ‘All Men Shall Be Brothers’처럼 우리 모두가 인류애를 발휘하고, 너도 나도 구호금 모금에 동참할 것을 권한다. 세계 일등국가에 사는 우리들로서 다같이 ‘사람 사는 모습’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한인사회 각계에서 성금을 모으는 일은 아주 잘하는 일이다. 참가하는 모습은 더욱 보기 좋다.


클라라 박 / CSUN 교수·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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