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지나고 다시 새해를 맞이했다. 지나가 버린 시간과 경험은 기억의 세포에 저장되어 현재와 미래를 살찌게 한다. 앞으로만 흐르는 시간은 때로 역류해서 우리를 지나간 감정에 젖어들게 한다. 그립고 아쉬운 추억들, 못 다한 절절한 낱말들이 피톨로 떠돌고 있는 과거로 역행하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며 내 마음의 강을 오르내린다. 어느 누구도 지나온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숙명적인 한계에서 우리는 실존하고 있다.
또한 알지 못하는 미래는 언제나 장밋빛인가? 아니다. 모르는 것은 오히려 두려움과 불안을 동반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앞에 놓인 시간들, 미래라는 시간을 계획하고 조절하고 활용해서 가치 있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현재뿐이다. 과거를 비춰보며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온전히 갖기 위해 우리는 척박한 현재를 노력하며 살고 있다.
새해 새벽에 집 근처 산에 올랐다. 어슴푸레한 새벽빛을 배경으로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희망찬 가지를 뻗고 서있다. 숲 속에 있는 수많은 나무들, 오솔길에 떨어져 쌓인 푸르고 노랗고 또 붉게 모자이크된 단풍잎들 그 어느 것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다. 같은 나무와 토양과 환경에서 같은 시간을 살아온 나뭇잎들이 아닌가!
인간도 시간과 환경과 유전자의 영향을 받기에 어느 누구와도 똑같은 모습이 없다. 과거 수천 년을 지구상에 존재했던 인간들과 현존하는 65억의 사람들과 미래에 또 수천 년을 태어나고 사라질 인간들이 아무도 똑같지 않음을 생각해보면, 알 수없는 두려움으로 아득해진다. 더불어 아름다운 자연을 대할 때나 상상의 극한을 넘는 우주의 신비를 헤아릴 때면 평소에 잊고 지냈던 창조주에 대한 경외하는 마음이 깊이 물결친다.
가나안 땅을 찾아 이민 온 우리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공생하느라 생각지도 못했던 어려움과 고난을 겪어야했던 지난 세월이었다. 특히 지난해는 전쟁과 금융 쓰나미로 공포 속에서 방황했다.
사막의 만년청풀은 첫 꽃을 피우기까지 25년의 세월이 소요되며, 바다거북은 먼 바다에 나가 살다가 알을 낳기 위해 25년 만에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생명의 역사는 그렇게 빠르고 간편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안다. 굽힐 수 없는 의지와 고독과 아픔과 혼돈의 카오스를 딛고 뿌린 작은 싹으로부터 성장해서 오늘의 보람된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아프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내는 법을 배우므로, 고뇌는 우리 인간을 질기게 하고 단단하게 한다. 참고 극복하는 법을 잘 안다면 그것은 온전히 산 것이다. 그리해서 행복은 ‘어떻게’ 이지 ‘무엇’이 아니며 행복을 느끼는 ‘능력’이지 찾아 나설 ‘대상’이 아니다”라고 헤세는 칼 붓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했다.
과거의 집착에서 벗어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며 현재를 현명하고 충실하게 아름답게 행복하게 살도록 노력할 것이다. 경제의 어려움과 개인적 고민과 해일처럼 밀려드는 허무함을 이겨내고 경인년 호랑이해에는 어떤 어려움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더 강해지기를 우리 모두 기원하자.
김인자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