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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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는 날

2010-01-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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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미국

흩날리는 눈이 창밖 정경을 하얗게 지워 버렸다. 연못도 꽁꽁 얼었다. 모든 것이 멈춰서 조용하다. 단지 장필순의 노래 ‘눈이 오는 날’이 컴퓨터 스피커에서 울려나올 뿐.

폭설은 항상 지난 기억들을 불러일으킨다. 2001년, 몇십년 만의 폭설 후 침묵에 잠긴 서울 올림픽 팍의 눈 속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늦은 아침부터 오기 시작한 눈이 점심시간이 되면서 학교를 닫게 만들 정도로 많이 왔었다. 5마일 떨어진 학교에 다니던 아들은 점심도 먹지 못한 채 학교 버스에 탄 후 2시간 반이 지나서 집에 왔었다. 초저녁이 되어서야 멈춘 눈은 14인치를 기록하면서 32년 만의 최고의 폭설을 기록했었다.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은 후 산보를 나갔다. 8시쯤이면 사람이 붐비고 거리가 바쁘게 움직였었는데, 그 날은 거리의 모든 것이 멈추어 죽은 도시와 같았다. 올림픽 앞길의 큰 길을 나올 때까지 그랬다. 항상 교통체증으로 정차한 차들이 매연을 뿜어대며 서 있던 10차선 큰 길에서도 차 한 대를 볼 수 없었다.


눈은 색을 없애버린다. 날카롭거나 모난 부분을 부드럽게 만들기도 한다. 거리, 인도, 잔디밭의 경계를, 자연과 인공의 차이를 없애버린다. 또, 춥기는 해도 우린 두껍고 하얀 이불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불은 우리의 걱정을 잠시 덮어 준다. 눈은 또, 모든 것을 천천히 움직이게 한다. 그 느린 움직임은 차가움의 본질이다. 열은 미분자의 빠른 움직임이며, 차가움은 느린 움직임인 것이다.

저온이 미분자를 천천히 움직이는 동안 거리의 차도 천천히 움직인다. 기후가 속도에 너무 익숙해진 우리의 행동을 적당히 늦춰 주는 게 아닌가? ‘운전하지 마시오’ 일기예보 아나운서가 경고를 한다. 학교도 문을 닫았다. 특히 내가 일하는 켄터키에선 길이 조금만 얼어도 모든 곳이 문을 닫는다.

동료 중에 ‘익스트리모화일’ 박테리아(극한 조건에서만 사는 박테리아)를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박테리아는 거의 끓는 상태의 온천물 속에서만 살고, 어떤 박테리아는 부식할 정도로 독한 산(酸) 속에서만 산다고 한다. 어떤 박테리아는 얼음 속에서만 살 수 있다는데, 내가 그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지난 연말 위스콘신에 사는 가족을 방문했을 때 눈 속을 헤쳐 가느라 왕복 32시간의 운전을 했어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눈과 겨울을 언급했던 것은 한국이 내게 특별한 때문만이 아니라 겨울을 경험한 외국이 한국뿐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식년 덕이다.

그 해의 겨울 산행도 기억난다. 등산화에 아이젠을 끼고 눈 속을 헤치며 광덕산을 넘다가 모두 눈 속에 파묻힐 뻔 했었다. 죽음을 뒤로 하고 내려와 산 밑 식당에서 욱신거리는 다리를 펴고 앉으니, 두부 전문집 주방장이 세 가지 요리를 내놓았었다. 덩어리 손두부 한 접시, 부서진 손두부 한 접시, 양배추와 섞은 손두부 한 접시였다. 반찬은 많지 않아도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다. 잣 띄운 뜨거운 칡차의 구수한 맛도 아직 생생하다.

신년을 맞으며 지금 한국도 기록적 폭설을 맞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2001년 1월1일 울릉도 온돌방에 누워 아침을 맞았던 것을 기억한다. 세 식구가 뜨끈한 방바닥에 엎드려 방문을 열고 밤새 동해를 건너 온 눈이 마당에 흩뿌려지는 광경을 한참 내다보았었다.

지구가 비스듬히 살짝 기울어진 덕분에 만들어지는 계절은, 지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다. 캐나다 가수 조니 미첼의, 눈 속 여행을 노래한 ‘헤지라’이건 장필순의 ‘눈이 오는 날’이건 눈 의 불가사의는 지극히 우주적이다.


케빈 커비 /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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