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천사를 떠나보내며

2009-12-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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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를 떠나보냈습니다. 사하라사막의 모래바람이 온 마을을 휩쓸던 날, 천사는 근 이년동안 자신이 돌보던 모로코 원주민들의 슬픈 눈물을 닦아주곤 홀연히 소천했습니다.

천사의 이름은 김소연입니다. 꽃 같은 24세의 나이. 꿈 많고 당찬 미 평화 봉사단원으로 아프리카 모로코의 오지마을을 자원했습니다. 오랜 가뭄으로 온 땅이 말라비틀어진 열악하기 그지없는 이슬람 이교도들의 사막 촌에 정착했습니다.

그리고 극심한 가난과 무지 속에 대대로 살아온 토인들에게 생계를 개척할 기술을 가르쳐주고 삶의 희망을 일깨워주는 헌신을 시작했습니다.


소연 양은 어려서부터 조물주께서 자신에게 너무 많은 재능을 주셨음을 감사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명문 로웰 고를 졸업하고, 스탠포드대학 입학 후 전액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머리와 재능을 주셨지요. 대학을 3년 만에 마치고 남은 1년 동안 독일 베를린의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세상을 볼 기회도 주셨습니다.

특히 소연 양은 언어에 소질이 남달랐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루터 교 소속 초 중학교를 다닌 덕에 독일어에 능통했습니다. 영어는 물론 한국어까지 3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습니다. 소연 양은 자신에게 여러 재능과 축복을 주신 데는 이유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세상 많은 불쌍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어야한다는 사명감에 불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편한 직장을 찾는 대신 샌프란시스코의 우범지대 미션 디스트릭으로 들어갔습니다. 10대 소녀들을 돕는 아메리코(Americorps)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흑인 미혼모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살길을 찾아주는 멘토가 됐습니다. 그리곤 2008년부터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세계를 향해 발길을 내디뎠습니다.

지구 끝 오지에 금쪽같은 딸을 보낼 때 그 부모는 어땠을까요? 더구나 능력과 재능이 탁월해서 주위의 흠모를 한꺼번에 받아왔던 딸에 대한 애처로움이 얼마나 남달랐을까 짐작할 뿐입니다.

소연 양이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 세계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올게요 하던 마지막 막내딸의 음성이 귀에 쟁쟁하다는 모친의 회고가 가슴을 울립니다.

부족함 없는 미국가정에서 태어나 자기 또래들처럼 편한 길을 갈 수 있었던 소연 양이 택한 삶을 보며 깨달음을 얻습니다. 이웃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적 결단이라는 생각입니다. 봉사하고 싶은 감정이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길을 향해 전력투구하는 것이 참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의인의 모습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소연 양은 우리 한인이민 역사의 새장을 연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이민 일세들은 먹고살기 바빠서 타민족의 어려움을 돌아보는 데 인색했습니다. 그 결과 한인이민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굳어지지 않았습니까? 허나 열린 마음과 비전을 가진 소연 양 같은 우리의 이세들이 이웃 나눔을 세계 곳곳에서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간 고맙고 자랑스런 게 아닙니다.


소연 양이 떠나던 날. 어린이들을 위한 야학을 마치고 목이 말랐습니다. 정수시설이 전혀 없는 곳에서 마신 물이 그의 육신을 순식간에 병들게 했습니다. 자동차로 12시간이나 떨어진 도시에 가서 겨우 의사를 만났을 땐 이미 깨어나질 못했습니다.

그 순간 소연 양은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빛을 온 세상에 환히 밝혀주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그 사랑의 빛 때문에 어제보다 좀 더 밝고 따뜻해졌습니다.


김희봉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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