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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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을 보내면서

2009-12-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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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을 지나가고 있는데 12월은 보이지 않는다. 급행열차를 타고 갈 때 차창에 스치는 한적한 간이역의 작은 역사 이름을 보려고 해도 후딱 후딱 지나가는 속도 때문에 읽을 수가 없었듯이 시간의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12월에 쌓인 지난 일년 동안의 내용을 볼 수가 없다.

다만 연민하는 정으로 세월을 아쉬워할 뿐이니 마음이 공허할 뿐이다.

이 세상에 마음이 없는 것 어디 있으랴. 찬바람에 얼굴을 내밀고 앉아 있는 바위에도 마음이 있어 무심히 지나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무거운 한숨을 더하여 가뜩이나 무거운 제 몸에 무게를 더하여 더욱 더 무거워지고, 내리는 흰 눈에도 마음이 있어 추워 떠는 산천초목과 왜 이민을 와 살아야만 되는지 영문도 모르고 하루 세끼 먹고 살려고 애를 쓰는 한 식구의 지붕을 따스한 손으로 덮어준다.


12월은 그렇게 한숨과 아쉬움과 따스함을 섞어 한 달을 만든다. 욕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겠지만 어떤 사람은 벌써부터 새해에다 욕심을 부린다. 하루를 무사히 살았으면 그만이고 한 달, 일 년을 잘 살아왔으면 그만이지 또 욕심을 부린다.
욕심은 꿈이 아니다. 적당한 욕심이면 보기에도 좋고 사는 데에도 짐이 되지 않는데 모두가 무거운 짐으로 욕심을 등에 진다. 부부라는 아주 가까운 촌수에도 어느 한 쪽이 무거운 짐을 지고 희생을 당하면 주종의 관계이지 부부가 아니다.

사랑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과연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고뇌와 고통과 이해와 인내를 버무려 만들어낸 봄 색깔이겠지만 사랑에는 처음부터 발을 들여놓지 말아야 한다는 어느 고승의 충고가 긴 여운으로 남는다. 사랑이란 좋으면 사랑으로 남고, 싫으면 이별, 미우면 상대를 헐뜯는 악연으로 남기 때문이다.

12월에 묻고 싶다. 해마다 갔다가 다시 오는 12월에 묻고 싶었다. 바위가 앉아서 바라보는 하늘이 길이고, 풀이나 나무들이 욕심 없이 바라보며 키를 늘이는 하늘이 길이 아니냐고 묻고 싶었다.

그리움, 그리고 또 그리움. 얼굴 치장하느라 화장품 가게 들르고, 몸치장 하느라 옷가게 들르지만 마음 치장 하라고 문을 열어 놓은 상점은 한 군데도 없다.

조용한 눈 하나도 없는 이민사회, 어디를 가나 눈을 감지 않는 카메라의 렌즈처럼 무언가 바쁘게 찾아다니는 눈빛뿐이다.

무엇을 벌었다고 할 것이며 무엇을 흘리며 살았다고 할 것이며 무엇을 남겼다고 할 것인가? 바쁘게 지나가는 시커먼 먹구름도 빗방울만큼은 깨끗하고 맑게 내려준다.

영문도 모르고 그저 바쁘기만 한 타향살이, 한 인생 살아가는 목숨에 무슨 제목으로 바랄 것이 있겠느냐만 12월에 내리는 흰 눈처럼 조용히 맑거나, 향기 품은 꽃 봄의 정오처럼 따스하고 깨끗한 그리움을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뿌려 주었으면 좋겠다.


김윤태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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