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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느리게 양육하기

2009-12-2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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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뉴욕차일드센터 아시안클리닉 부실장

과거 우리들은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고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세상에 살았었다. 한 두 시간 걸어서 학교에 등교하거나 몇 시간에 한 번씩 신작로를 달려오던 버스를 기다렸다가 장에 나갔다. 전화가 없었기 때문에 이웃집 소식은 며칠이 지나서 전해들을 수가 있었고 일 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던 동네 엿장수를 위해서 며칠 동안 고철을 모아 두었다가 엿을 바꾸어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명절 때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가 새 옷을 얻어 입고, 토요 명화와 주말의 명
화를 일주일 내내 기다리다가 졸린 눈을 비비며 텔레비전 앞에 모여 영화를 보았던 추억은 우리 부모 세대들이면 누구나 기억할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렇게 살았고 또 불평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진보한 현대문명은 삶의 속도를 바꾸어 놓았다. 전화나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 비해서 더욱 빠르게 정보를 습득하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수 백 개의 텔레비전 채널을 통해 원하는 방송프로그램을 골라서 시청할 수 있고, 인터넷에 접속하면 원하는 정보들을 신속하게 얻을 수 있다. 삶의 외형이 변한 것처럼 인간의 내면도 변했다. 현대인들은 기다릴 줄을 모른다. 모든 것을 빠르게 처리하고 답을 얻길 원한다. 숨가쁘게 변화하는 시대에 느리다는 것이 머무를 공간이 없어 보인다. 변화된 세상 속에서 우리 부모들의 양육방식도 무척 달라졌다. 소위 빠르게 양육하는 것이 대세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요즘 같은 세상 속에서 느리게 살아간다는 것은 좀 뒤떨어진다는 의
미로 받아들여 지기 때문이다. 글로벌시대에 아이들은 전세계와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부모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 간다. 혹 우리 아이가 뒤쳐질까 봐 자녀들을 철저하게 준비시키려 한다.


또한 과거와는 달리 늦게 결혼해서 아이를 한 둘 낳다 보니 부모들은 더 안달해 한다. 양육에 투자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안감이 부모들을 더 급하게 몰아간다. 비교적 젊은 시절에 아이를 낳았다면 시행착오를 각오하며 이것 저것을 시도해 보겠지만 30대 후반에 첫 아이를 낳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전투적인 자세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모든 것을 완수해야 한다. 마치 하루 이틀 남겨 놓고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대학생의 심정처럼 말이다.
한국에는 아직 기저귀도 떼지 못한 아이들이 조기교육 프로그램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장난감 가게에 가 보면 영아들을 위한 학습교재들이 즐비하다. 혹 우리 애가 다른 애들보다 뒤쳐질까 봐 너도 나도 조기학습 열풍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유치원과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부모들은 더욱 속도를 높인다. 우리 한인부모들도 미국에서 자녀를 키운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학원과 과외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다. 아마 한인타운처럼 학원이 성황인 지역은 미국 내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들은 아이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빽빽한 시간표를 짜놓고 밖에 맡겨 놓는다. 마치 자녀양육에 대한 신념이나 확신을 상실한 채 남들 하는 대로 세상의 시류를 따라 뒤쳐지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느리게 양육한다는 것은 아이들을 느림보 거북이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시대, 정보혁명의 시대에 적응할 수 없는 사람으로 키우자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아이의 발달단계에 맞추어 속도를 맞추어 가는 양육을 말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특성을 발견하고 자신의 인생을 설계해 나갈 수 있도록 시간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부모와 함
께 할 시간이 필요하고 또래와 함께 뛰어 놀 시간이 필요하고 무엇을 선택할 지 고민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은 짧은 시간 안에 생산공정을 끝내야 하는 제조품이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시행착오와 과정을 거쳐서 성장하는 독립적인 인격체이다.

우리들의 불안감과 빨리빨리 근성은 좀 제쳐두자. 자녀양육에 철학과 신념을 갖고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느끼며, 인생의 참 의미와 즐거움을 체험하며, 세상에서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예전에 하버드 스탠퍼드 등 아이비리그 대학에 재학중인 한인대학생들의 중퇴율이 절반에 달한다는 안타까운 기사를 떠올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 그 아이들이 너무 빨리 달려온 것은 아닐까 늘 빠르고 완벽하게 살았던 삶이 다 성공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되새겨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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