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쟁과 사랑의 예리한 관찰

2009-12-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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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교사 - 재니스 Y. K. 리 지음

재니스 리는 1973년 홍콩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명문 세인트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글을 쓰기 위해 헌터 대학 대학원에 들어가 이창래 교수 밑에서 소설 창작을 공부했다. 그리고 약 5년에 걸쳐 쓴 소설이 200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픽션부문 우수작품으로 선정되고, 펭귄 출판그룹 계열인 미국 바이킹사를 시작으로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노르웨이, 중국, 브라질 등 세계의 유수 출판사와 계약을 맺으면서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소설 『피아노 교사』는 현재 13개 나라에서 출간되어 호평을 받고 있다.


2차 대전이 한창이지만 홍콩에는 아직 그 영향이 미치지 않던 1941년, 영국인 윌 트루스데일이 홍콩으로 온다. 그는 영사관 파티에서 중국인 아버지와 포르투갈 어머니를 둔 유라시아 혼혈로 미모와 재력을 갖춘 트루디 리앙을 만나게 되고, 둘은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일본군이 홍콩을 점령하면서 그들의 사랑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52년, 저수지 건설 감독관으로 영국에서 파견된 토목기사 마틴 펜들턴과 그의 아내 클레어가 홍콩에 도착한다.

금발의 ‘영국 장미’ 클레어, ‘이국적인 전갈’ 트루디, 그리고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윌 트루스데일. 작가는 저마다의 이상적인 사랑을 추구했지만 자신이 가진 한계와 상대가 가진 한계, 그리고 역사적 한계를 넘지 못하고 끝내 좌절하고 만 세 주인공의 얽히고설킨 사랑을, 그리고 이를 딛고 새로운 자아를 찾아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클레어의 모습을 냉정하면서도 매혹적으로 그려낸다. 또한 그 배경에 놓인 ‘전쟁’이라는 서사적 장치와 다양한 인종과 계급이 공존하는 홍콩이라는 공간을 통해 이 인물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배신과 죽음과 절망, 탐욕과 위선과 파멸을 과거의 행위가 현재에 드러나는 입체적인 다중구조 방식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피아노 교사』는 단순한 러브스토리에 머물지 않고, 전쟁이라는 역사적 상황과 개인의 상황이 맞물리면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다각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서사의 깊이를 획득한다. 『피아노 교사』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형열(알라딘유에스 대표)
www.Aladdin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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