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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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의 힘

2009-12-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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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주위의 가까운 사람들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힘겹게 씨름하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시편기자의 고백 ‘인생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머와 재치를 잃지 않는 사람을 대하면 그분에 대한 신뢰감도 더 하게 된다. 여유와 자신감이 없으면 유머감각은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 데이빗 레터만 쇼에 출연한 오바마 대통령에게 데이빗이 “당신에 대한 정치인들의 많은 적의가 당신의 피부 색깔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라는 말을 했다. 이에 대해 오바마는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흑인이었다”는 여유 있고 재치 있는 대답으로 직접적인 논평을 피했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링컨 대통령은 우울증으로 고생했지만, 또한 유머와 재치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나같이 밤낮으로 긴장하는 사람이 만일 웃는 일도 없었다면 벌써 죽었으리라”라고 했다 한다.

선거운동 중 상대방이 링컨은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자 링컨은 “내가 두 얼굴을 가졌다면 이렇게 중요한 날 왜 이렇게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느냐?”고 유머 있게 응수해 청중을 사로잡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유머의 위력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레이건 대통령 역시 농담을 잘하며 여유 있는 모습 때문에 온 국민을 안심시킨 특별한 지도자였다. 재임 시 힝클리에게 총격을 당했을 때 정국이 뒤숭숭해지고 주식 값이 크게 하락했다. 그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간호사들에게 둘러싸여 “내가 이렇게 많은 예쁜 아가씨들한테 둘러싸여 있는 것을 낸시가 아는가?”라고 익살스러운 질문을 한 것이 신문, 방송을 통해 전해졌고, 그 여유 있는 농담 한 마디가 그의 건재함을 과시하며 주식 가격이 회복 되었다고 한다.

와이오밍에 있는 ‘그랜드 티튼’ 국립공원의 별장에서 레이건이 소련의 대통령 고르바초프와 며칠을 보낸 후 곧 미소 냉전이 종식되었다는데, 아마도 레이건의 유머 넘치는 대화, 환상적인 산봉우리와 온갖 야생초와 야생동물이 어우러진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고르바초프의 마음을 녹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험하고 가파른 인생길에 쉼표를 찍게 하는 오락, 취미생활, 여행 등 자기 자신과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것들이 있지만, 유머 감각 또한 윤활유와 같이 삶의 바퀴를 부드럽게 한다. 심각한 현실도 그리고 갈등, 미움 등 마음의 상처도 인생을 잠깐 소풍 나온 자의 심정으로 바라본다면, 그래서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즐기는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다면 삶은 가볍고 쉬워지리라 생각된다. 천국을 음식 중 가장 맛있고 기대되는 디저트에 비유하며, 자기의 장례식 때 디저트를 먹을 수 있도록 손에 포크를 쥐어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이 분은 틀림없이 인생을 유머와 여유로 살아왔다고 믿어진다.


박찬효 / FDA 약품 심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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