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존중과 배려 담은 ‘호스트 테이스팅’

2009-12-0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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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매너의 본령은 크게 상대방에 대한 배려 (you attitude)와 타인에 대한 존중(tolerance) 그리고 철저한 주인의식(host initiative)으로 볼 수 있다. 그 중 상대방을 배려하는 호스트로서의 철저한 주인의식은 모든 비즈니스 접대에서 당신을 협상의 우위로 놓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고 또 적극적으로 주인의식을 발휘해서 접대 자리를 유쾌하게 이끌어 낸다면 비즈니스 차원을 넘어서 당신은 상대방의 존경심까지 이끌어낼 수 있다.


행사 성격과 와인 컨셉 정리 등 호스트 주인의식 필요

호스트 테이스팅의 유래는 서양식 예절 중 하나인 악수나 식사 때 손을 가볍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행위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악수가 “내 손에 당신을 해칠 무기가 없다”는 뜻이며, 손을 테이블에 가볍게 올려놓는 것이 “나는 테이블 밑에서 손으로 독약을 섞지 않는다”는 것처럼 호스트 테이스팅도 “이 술에는 아무런 해가 없다. 그러니 내가 먼저 마신다”는 즉, 상대방을 안전하게 대하겠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 안전유무의 확인보다는 주문한 와인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참석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의미로 확장된 와인 매너의 꽃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캠브리지대 석좌교수는 당시 COSMO 2000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 중이었다. 그는 신라호텔에 머물면서 프렌치 레스토랑인 콘티넨탈에 여러 손님들을 초청해 식사를 했다. 당시 스티븐 호킹 박사는 신체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와인을 직접 시음하는 모습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체가 불편하기로 누구나 다 아는 박사가 와인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두꺼운 와인 리스트에서 눈짓으로 와인을 고른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직접 시음(호스트 테이스팅)까지 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와이셔츠에 와인을 주르르 흘려가며 “아주 좋은데요. 손님들께 서브해 주시지요”(우물우물 말한 것을 부인이 통역)라고 말했다. 대개 호스트의 진정한 역할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으레 “당신들이나 마셔” 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소외시키거나 아니면 이 역할을 아예 와인 전문가나 남에게 일임하였을 법한 일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손님들을 위해 기꺼이 와인을 고르고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다양한 엔티테인먼트 요소나 재미있는 소재를 미리 준비하지 않는 편이다. 즉 남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예가 드물다. 그저 식사 값, 술 값 내주는 게 호스트 역할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식사 메뉴를 선택하거나 와인을 주문할 때는 아랫사람 또는 서빙하는 사람이나 식당 주인에게 알아서 가져 오라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맡겨버리기 일쑤이다. 그러나 이것은 와인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호스트의 역할을 모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행사가 있다면 그저 밑에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보다는 직접 식사와 와인에 대한 부분을 챙길 필요가 있다. 레스토랑에 연락해 미리 메뉴와 와인 리스트를 받고 행사 성격에 맞는 컨셉 정리와 수준을 정하는 디테일한 정성을 쏟아야 한다.

호킹은 장애인이라는 것으로 자신을 변명하거나 자위하는 것이 아니라 호스트로서 할 일은 다한다는 자세와 역시 서구문화의 타인을 배려하는 문화적 소양을 유감없이 발휘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타인에 대한 배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인간 존엄성까지 스스로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의 호스트 테이스팅에서 우리는 와인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가치인 타인에 대한 존중(torelance)과 배려(you attitude)에 대한 마인드와 호스트 이니셔티브(host initiative) 정신을 읽어볼 수 있다.


‘성공 비즈니스를 위한 와인 가이드’
(김기재 지음·넥서스 Book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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