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치밀하게 준비하라, 마음과 전략으로

2009-12-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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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와인 종류 따라
행사 형식·수준 판가름
목적에 맞는 선택이 중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에 대한 사후수습을 위해 개최된 빈 회의에서 당시 프랑스의 외상이었던 탈레랑은 샤또 오브리옹으로 각국 외교관들을 사로잡아 전후 프랑스를 안정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탈레랑은 ‘요리 외교 시대의 황제’라고 불리던 자신의 요리사, 마리 앙뚜완느 까렘을 첩자로 쓰기 위해 유럽 왕들의 요리사로 보내기까지 한 인물이다. 결국 각국 대표들은 사교에만 열중하여 “회의는 춤춘다”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였다. 와인과 음식은 그 때나 지금이나 외교 활동의 윤활유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렇듯 와인은 과거나 현재나 외교 활동에 있어 필수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외교 활동에 쓰인다고 해서 무조건 비싼 와인만이 효용을 갖는 것은 아니다. 위의 김찬진 박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오히려 해외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고국의 한 고향 마을을 떠 올릴수 있는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건 값어치로 환산할 수 없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외교 활동이든 비즈니스든, 필자가 행하는 와인 강의에서든 상대에 대한 철저한 상황 분석과 치밀한 사전 준비가 실제 이익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협상에 와인이 활용된다면 그 철저한 준비는 기본이다. 준비를 소홀히 한 협상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불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것은 상대방에게 협상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과 그런 나이브한 정신 자세 때문에 후에 후회할만한 양보를 해야 하는 경우를 반드시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행사에 사용되는 와인을 준비하는 것은 사실 그 변수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기본적인 변수들은 상정해 볼 수 있다. 그것은 행사의 목적, 행사참가자, 행사의 형식과 서빙되는 음식 및 예산등에 따라 달라진다.

모든 행사에는 목적이 있다. 위의 사례에서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예기치 않은 감동’이라는 컨셉에 맞춰 와인이 선정되었다. 이외에도 필자가 직업상 와인을 선정했던 사례들은 대부분 이 의미, 목적을 탐구한데서 나온 것이었다. 2003년 말 모 텔레콤의 종무식용 와인으로 당시 국내 단 10병 밖에 없었던 샤또 글로리아 1.5리터 매그넘 사이즈의 와인을 추천했고 모 회사의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에 사용되었던 크뤼그 샴페인은 ‘시간에 대한 존경’이라는 이 샴페인의 철학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면서 그 회사의 과거, 그리고 현재, 나아가 미래가 어떨 것인지에 대한 의미를 깊게 가져갈 수 있게 해 주었다.

때로 와인의 빈티지를 와인 선정에 활용하는 예도 많은데 예를 들면 어떤 분의 고희에 맞춰 탄생연도가 같은 와인을 선정하는 경우 또는 창립기념 연도에 빈티지를 맞추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행사의 주인공이 와인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더욱 그 준비에 감동과 의미를 배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와인을 아무리 좋은 의미로 선정했다고 해도 참가자들이 그걸 즐길 수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때로는 10여만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샴페인보다 차라리 만원 상당의 달달하면서도 마시기 쉬운 조닌 아스티 스프만테가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레드와인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에는 쌉싸한 맛이 특징인 고급보다는 단맛나는 스파클링 와인이 더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몇 가지 종류의 와인을 준비할 것인가는 행사의 형식과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행사의 형식 또한 정해야 한다면 만나는 상대에 따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상황이 대부분일 것이다.

첫째는 부담이 적은 상대이다. 가볍게 만나는 자리에는 메인 요리에 맞는 와인 한가지 정도만 준비하면 된다.

둘째는 어느 정도 격식이 필요한 상대이다. 이럴때는 식전주용 와인으로 샴페인을, 메인 요리용으로 레드 와인, 두가지 종류를 준비한다.

셋째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연출해서 감동을 주고 싶은 상대이다. 이때는 격식에 맞게 식전주용, 메인 요리용, 디저트용으로 적어도 세 종류이상의 와인이 필요하다.

최상의 준비는, 리셉션 타임에는 샴페인으로, 전채요리, 생선, 고기요리(메인 최소2종), 디저트 와인, 나중에는 식사를 마치고 다시 자리를 옮겨 나누게 되는 브랜디나 포트류까지 비즈니스 디너의 모든 흐름에 맞추어 적절한 와인과 다른 술을 배치하는 것이다.


‘성공 비즈니스를 위한 와인 가이드’
(김기재 지음·넥서스 Books)에서


샤또 오브리옹(왼쪽), 샤또 글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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