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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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 그건 축복일지 모른다

2009-11-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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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아 통해 진정한 삶 배워

▶ 우리 사회 열린 마음 가져야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친구가 전화를 했다. 얼마 전 아기를 가졌는데 다운증후군이 있어 유산해 버렸다고 했다. 그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으며 그러는 동안 내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우리 집에는 다운증후군에 가까운 장애를 가진 진한이가 있으며, 전화를 했던 친구는 진한이를 어렸을 때부터 아주 귀여워했다.

최근, 미국의 통계 자료에 의하면 양수검사를 통해 다운증후군이 있다고 밝혀진 아이 중 92%가 낙태된다고 한다. 이렇게 대부분의 산모가 낙태를 결정하긴 하지만, 그 중에는 자신의 아이에게 장애가 있기 때문에 낙태를 한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마땅하지 않다고 하여 낳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 몽골리즘이라고 불리던 다운증후군은 염색체의 이상에 의해 생기는 장애이다. 1866년 영국의 의사인 John Langdon Down이 그 특성을 발표함으로써 다운증후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아이는 독특한 외모와 지적장애뿐 아니라, 심장 결함 등의 건강문제까지 동반한다. 하지만 대체로 성격이 유순하고 사교적이어서 키우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내 친구가 다운증후군이 있는 아기를 유산해 버리기 전에 내게 의논을 하였더라면 나는 뭐라고 했을까? 내가 진한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임신 중 알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하였을까?

한국에서 아이에게 심한 뇌성마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한 아버지가 인터넷에 올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아버지는 아이와 함께 죽을 수 있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고 했다. 나는 그 부모의 심정이 어떤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았다. 나도 진한이가 어렸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하면 살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마 아주 오래 전부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진한이를 보며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행복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NICHCY(Center for Children and Youth with Disabilities)의 회보에 한 어머니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경험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은 지금 알지 못하겠지만, 장애가 있는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 축복임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나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통해 인내심을 배웠고, 내가 너무 바빠서 알아차리지 못했을 기적을 목격하게 되었으며… 받아들이는 것을 배우고,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스물여섯 살이 된 우리 큰 아들 진한이는 여전히 읽고 쓰지도 못하고 둘 더하기 둘의 셈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나는 요즘 진한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때가 많다. 그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 곁에 다가와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맑은 미소는 항상 변함이 없다. 내가 저녁을 지을 때는 접시 세척기에 있는 그릇을 선반에 정리해서 넣어주고, 쓰레기를 비워주며, 내가 장을 보러 갈 때는 항상 기쁜 얼굴로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어준다. 그리고 단풍과 저녁노을이 얼마나 고운지, 어린 아이와 강아지가 얼마나 귀여운지 보라고 일러준다.

다행히 우리는 진한이를 미국에서 키워, 유치원에서부터 통합교육을 받고, 같이 여행을 다니고, 음악회에 가고… 함께 사는데 불편함이 없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 한국에서는 그 상황이 다른 것 같다.

우연히 Daum 미디어의 ‘아주 특별한 여행’이라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느라 여행 한번 해보지 못한 23명의 어머니들이 2박3일간 제주도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어느 어머니는 22년 만에 처음 하는 외출이라고 하였다. 지적장애 1급인 아들을 낳고는 가족 간의 오붓한 외식은커녕 명절 친척 방문이나 근처 나들이조차 가지 못했다고 한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아주 큰 짐을 지고 살게 된다. 임신 중 검사를 함으로써 장애가 있는 아이가 세상에 나는 것이 줄어든 것 같지만, 어떤 연유로건 그 아이들이 태어나게 된다. 다운증후군은 줄어들더라도 자폐증이 있는 아이는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누군가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책임을 맡게 된다. 흔히 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그 아이가 자신의 잘못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은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과제이다.

윤석인 수녀는 열살 때 열병을 앓고 온몸의 골절이 모두 마비되어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다. 윤 수녀는 장애인이 된 뒤 그림을 배우고 수녀가 되었다. 윤 수녀의 ‘동행’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누워 지내는 자기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이들의 막막한 그 마음이 되어 기도할 수 있는 깨달음을 준 몸이기에 나는 다시 태어나도 이대로의 몸을 취할 것이다…”

내 지난 경험을 윤 수녀님과 비교할 수 있으랴마는 나는 진한이를 통하여 이 세상에 그리고 바로 내 주위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픔이 얼마나 큰지도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요셉 골드스타인은 ‘명상으로 이르는 길’이라는 책에서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행복처럼 보이는 쾌락을 쫓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을 피하지 않고 느끼며 받아들일 때 행복해진다”라고 한다. 그건 자신의 고통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일 때 더하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은 바로 사랑이며, 사람은 사랑함으로써 행복해진다.

홍혜경 / 프리스쿨 특수교육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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