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족을 넘어선 감동을 선사하라

2009-11-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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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비싼 와인 고르기보다
행사 취지나 상대방 배려 우선
호스트의 적극적인 서빙도 중요

각종 행사들을 준비하는데 있어 어떤 와인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실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주최자가 행사를 통해 목적하는 바를 이루는데 있어 그저 아무 와인이나 마구 선정해서는 와인의 훌륭한 기능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데코레이션에 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와인이 사용되는 행사에 있어 와인 선정은 신중하고 치밀해야만 한다. 이러한 사전계획 하에 준비되고 전략적으로 활용된 와인은 호스트의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높여준다. 그렇게 된다면 와인은 행사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목적 이상의 성과를 얻게 해줄 것이다.

김찬진 박사는 국회의원 시절 프랑스 대사 내외와 모로코대사 내외, 주불대사를 역임한 한우석 대사 내외, BNP 빠리바의 필립 레이니엑스 지점장 내외를 초청해 자택에서 만찬을 계획 중이었다. 음식은 최고급 호텔의 유명 중식당에서 케이터링하기로 했지만, 와인은 무언가 임팩트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팔자에게 와인 선정을 요청했다.

우선 음식 메뉴를 검토하고 와인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해 몇몇 와인 전문가들에게 레서피를 주고 어울릴만한 와인 선정을 부탁했으나 모두 프랑스 그랑크뤼급 와인 일색이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그저 만족이 아닌 감동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 대상이 유럽계 대사부부였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면 유럽의 나머지 나라는 일사천리로 통과될 수 있다는 교두보적 성격도 갖고 있었다.

와인 선정 작업을 멈추고 원점을 돌아가 이 만찬의 컨셉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최종적인 지향점을 구체적으로 이미지화하고 나서 얻은 결론은 ‘Surprise!’였다. 예기치 못한 감동 말이다. 그렇게 컨셉을 정하자 와인 선택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필자가 가정해본 감동의 요체는 이랬다. 프랑스 유학생활 중, 생일을 맞았다. 프랑스 친구들이 내가 가장 먹고 싶어하는게 무얼까 생각해보니 바로 김치였다. 프랑스 친구는 양배추에 고춧가루를 버무려 김치를 담갔다. 당일 먹어보니 이건 진짜 김치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감동했다. 나의 친구들이 나에게 김치를 먹이려 이렇게까지 노력했다니 말이다.

이런 감동의 가상 시나리오를 갖고 먼저 최고급 중국 요리의 코스, 특히 그 소스에 맞는 와인들을 품종별로 선정하였다. 가격의 결정에 있어서는 의도적으로 3만원을 넘지 않는 와인들에서만 후보를 뽑았다.예를 들어 그 와인의 생산 지역이 만약 메이저 동네인 메독이라면, 차라리 그 옆의 약간 외진 동네인 베르즈락 와인을, 그리고 디저트 와인으로 쏘떼른이 유명하다면, 역시 위성 도시인 쌩크르와 듀몽이라는 변방 와인을 배치하는 식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3만원도 안되는 와인을 그것도 최고급 중국 요리와 매칭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칫 오인될 수 있는 고급 와인 일색의 속물주의적 접근이 아니라 스토리가 있고 와인 세계의 작은 지역인 변방 와인도 이해하고 있다는 뜻밖의 감동이 필요했다.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은 호스트인 김찬진 의원이 얼마나 투철하게 호스트 이니셔티브를 가지고 상황을 주도해 나가느냐에 있었다. 매 코스마다 와인과 음식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식전주, 식중주, 식후주를 구사하도록 했다. 또한 동행된 호텔에서 파견된 소믈리에가 있더라도 가급적 호스트로서 적극적인 서빙을 요청드렸다.


그 다음날 이 분이 직접 매장에 들르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김 사장은 이제부터 나의 와인 컨설턴트야” 김 의원은 바로 다음날 프랑스 대사 부부로부터 만찬 초대를 받았던 것이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 북동쪽에 위치한 베르즈락 지방에는 소규모 원산지 명칭 포도원들이 많다.




‘성공 비즈니스를 위한 와인 가이드’
(김기재 지음·넥서스 Book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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