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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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 장학생 좌담회

2009-11-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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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벌레’는 개인 특성 무시한 처사

미국사회에는 ‘아시안=소수계 모범 모델(Model Minority)’이란 공식이 존재한다. 아시안이 타 소수계보다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며 교육수준과 소득이 높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시안 학생들도 이런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실이든 아니든 ‘수학과 과학의 천재’ ‘A+ 우등생’ 등 공부벌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올해 선발된 제24회 백상 장학생<본보 11월14일자 A1면>들을 통해 한인학생들이 아시안에 대한 미국인들의 고정관념 때문에 과연 학업현장에서 느끼는 부담감은 어떤 것인지, 학업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엿보고자 한다.

<좌담회 참석자>
줄리 김(스타이브센트 고교)
박진성(미국명 테렌스·포레스트힐스 고교)
장유경(리맨칼리지 아메리칸 스터디스 고교)
서준호(미국명 앤드류·롱아일랜드 폴 슈라이버 고교)
정은비(롱아일랜드 해프 핼로우 힐스 웨스트 고교)
박종훈(미국명 제임스·아슬리 고교)
손지영(미국명 앨리사·뉴저지 체리힐 이스트 고교)

‘아시안=우등생’에 대한 생각은?
서준호(이하 준호): 특정 인종에 대해 뿌리박힌 고정관념은 지나치게 일반화시킨 것이기에 옳지 않다. 아시안이 모범적인 소수계란 평가는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모든 아시안에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줄리 김(이하 줄리): 모범 소수계란 평가가 불쾌하진 않다. 오히려 아시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떨칠 수 있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과장된 부분도 많아 때로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박진성(이하 진성): 어느 인종에나 특정한 고정관념이 있기 마련이며 아시안에 대한 고정관념 역시 개인의 특성을 무시한 것이고 잘못된 것도 많다.

손지영(이하 지영): 성실하고 수학·과학의 천재라는 것 말고는 아시안에 관한 다른 고정관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모두 나쁜 내용은 아니지만 일반화하는 것도 잘못이다.

불쾌감을 느낀 적도 있나?
정은비(이하 은비): 아시안 학생은 아이비리그 진학만 고집한다는 얘기는 솔직히 듣기 싫지만 똑똑한 학생으로 비춰지는 점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장유경(이하 유경): 아시안 학생을 공부벌레 취급하거나 늘상 시험성적만 생각하는 학생으로 볼 때는 심히 불쾌하다. 의외로 많은 아시안 학생들이 학교활동도 활발하고 교우관계도 원만하다.

박종훈(이하 종훈): 아시안 학생에 대한 고정관념은 크게 하나로 압축된다. 똑똑하고 열심히 공부만 하고 만점 성적을 받는 학생이란 것이다. 친구들이 때로 짓궂게 놀리기도 하지만 불쾌하진 않다.

줄리·진성: 사교성이 없고 독립심이 약하며 창조적 사고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에는 늘 불쾌감이 생기고 때론 모욕적이다.

이런 고정관념이 도움이 된 적은?
유경: 주변에서 똑똑하고 수학·과학을 잘한다고 얘기할 때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고 자신감도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어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시안이라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상당수의 미국인들을 보면 속상하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준호: 수학시험에서 만점을 받지 못하면 친구들이 의아해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심리적인 압박감 때문에 오히려 잃는 것이 많을 수도 있다고 보기에 개인적으로는 고정관념의 틀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한다.

은비: 단지 아시안이란 이유로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특히 수학이나 과학문제를 풀 때 친구들이 많이 묻기도 한다. 주변의 기대에 맞추려 더 열심히 노력하다보니 개인적으로는 학업성취도 향상에 도움이 됐다.

진성·종훈·줄리: 주변의 기대에 맞춰야겠다는 강박관념으로 학습동기가 자극되지는 않았다. 부정적인 영향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아시안이어서 좋은 성적을 받은 것도 아니고 다만 각자 열심히 노력한 결과를 얻은 것뿐이다.

지영: 특정 인종 출신이어서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는 발상 자체가 우습다. 이는 개인의 힘든 노력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아시안이 수학·과학을 잘한다지만 나는 수학을 제일 못한다. 그래서 두 배 더 노력했고 덕분에 이만한 결과를 얻은 것이지 아시안이어서가 아니다.

한 조사에서 미주 한인학생들은 동남아시아 등 타 아시안 소수계보다 우월감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긍정적인 아시안 고정관념에 대해 한인으로 특별한 자부심을 느끼나?

전원: 한국인의 뿌리를 지닌 한인이라는 사실에는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한인보다 소득수준이나 교육수준이 낮은 다른 아시안 소수민족보다 한국인이 우월하거나 우월하지 않다거나 그런 생각을 가져본 적도 없고 그들과 거리를 두고 아시안 사이에서 차별화하려 하지
도 않는다.

이런 고정관념이 미국인들의 인식 부족에서 기인했다고 보나? 아시안에 대한 높은 기대치로 심리적 압박감이 크고 학업 도움도 쉽게 받지 못하는 불이익에 대한 지적은?

종훈: 당연히 아시안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위험이 큰 것도 사실이고 버지니아텍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은비: 도움을 찾으려는 아시안 학생들의 노력부족도 맞는 지적이다. 공부를 잘하면 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주류사회의 시선에도 문제가 있다.

준호: 고정관념에서 비롯될 수 있는 여러 측면의 다양한 심리적 문제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강화가 필요하다.

유경: 아시안이라고 늘 완벽하진 않다. 대다수가 전체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고정관념이 갈수록 심해진다고 보나?
준호: 그렇다. 갈수록 대학 진학이 어려워지다보니 학교와 사회에서 기대치도 높아지고 그럴수
록 아시안에 대한 고정관념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본다.
줄리: 이제는 미국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경쟁하는 사회가 되다보니 눈에 띄는 실력으로 우뚝
서는 아시안 학생들의 성공이 더욱 두드러지게 조명되면서 고정관념도 갈수록 커갈 수밖에 없
다.
은비: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학교나 사회가 모두 다인종의 다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
이려는 분위기다보니 여전한 차별이 남아있을 수는 있지만 개선되고 있는 것 같다.
지영·유경: 줄어들고 있고 앞으로도 더 줄어들 것으로 본다. 아시안이 별로 없는 학교에 다니
지만 고정관념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종훈: 학교나 사회가 갈수록 인종적 다양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히 줄어들고 있다고
본다. 고정관념이 아주 없어지진 않겠지만 점차적으로 옅어질 것이라고 본다.

기타 의견은?
진성·준호: 특정 인종을 하나의 획일적인 기준으로 묶어서 단정 짓는 것은 옳지 않다. 아시안이 소수계 모범 모델이란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동기를 부여해 공부도 하고 장래 꿈을 성취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본다.

줄리: 주류언론에 방과후 사설학원에 다니며 밤낮으로 공부하는 미주 한인학생들의 모습이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교육적 열정은 높이 사지만 아시안 학생들이 각자 열심히 노력해 얻은 성과가 하찮게 취급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지나친 학원 의존형 학습방법에서 아시안 학생들도 탈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유경: 특정 고정관념이 어느 정도 사실일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전체가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시안 부모들의 지나친 교육열도 이런 고정관념을 갖게 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한 만큼 긍정적인 방향의 개선이 요구되는 바이다.

<정리=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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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주류사회에 팽배한 아시안 학생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나누고 있는 제24회 백상 장학생들. <사진=윤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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