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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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크 박사와 월 스트릿

2009-10-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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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자본주의-러브 스토리’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월 스트릿의 금융귀족들을 예리한 칼날로 난도질 한다. 영화는 디지털 시대와 고대 로마 제국시대를 수시로 오가면서 종횡 무진 펼쳐진다. 그는 영화 속에서 월 스트릿에 몰려든 투기꾼의 집단인 까마귀 떼 속에 하얀 학 같은 존재로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조나스 솔크박사(Dr. Jonas Salk, 1914-1995)를 등장시키고 있다.

솔크 박사는 누구인가. 소아마비 백신의 접종을 발굴해 어린이들의 신체불구가 되는 비극을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한 의학계의 기념비적인 의사이면서 세균학자이다. 2차 대전 후 미국은 어린아이들을 공격하는 무서운 소아마비 공포로 떨었다. 잘 뛰어 놀든 아이들이 고열로 앓다가 갑자기 근육이 마비되어 땅을 딛고 일어설 수도 걸을 수도 없는 평생 신체장애자가 되는 끔찍한 병이다.

20세기 초 범국민적인 모금운동과 과학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소아마비 퇴치운동 속에 그 주역은 피츠버그 대학 연구실의 조나스 솔크 박사였다. 하루 16시간 주 7일 연구실에 갇혀 있던 그는 폴리오 백신 개발로 하루아침에 세상을 발칵 뒤집는 유명인사가 됐다.


1955년 그의 소아마비 백신 개발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날은 국가의 축제일이었다. 그는 백신제조법을 특허로 등록하지 않고 무료로 공개했다. 궁금한 이들이 그에게 물었다. “백신제조법의 특허의 소유자는 누구입니까?” 그는 “아무도 없다(No One). 저 태양을 특허로 신청할 수 있겠는가?” 라고 짧게 답했다. 그는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 속의 부속품으로 전락하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자녀 교육에 열정을 쏟았던 이민 1세이다.

하지만 마이클 무어 감독은 요사이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젊은 두뇌들이 월 스트릿으로 몰려드는 현실을 슬퍼한다. 땀 흘리며 일하는 노력의 대가의 가치는 없어진 것이다. 대형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진의 천문학적 연봉은 마약처럼 젊은이들을 환각상태에 빠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뚱뚱한 몸집에 청바지를 입고 야구 모자를 쓴 50대 중반의 마이클 무어 감독은 금융가의 심장부인 월 스트리트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는 “범죄현장에 들어가지 마시요” 라고 쓰인 노란 테이프를 뉴욕 금융가의 하늘을 찌를 듯한 초고층 빌딩 입구에 둘러놓는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미국인들에게 호소한다. “대형금융회사들이 미국인들에게 마구잡이로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어 대출금을 갚지 못한 서민들을 길거리로 쫓아내고 있다. 미국사회는 저당물로 잡힌 집 들을 헐값으로 사들이는 남의 불행을 딛고 이익을 챙기는 비정한 사회로 병들어간다. 미국인들은 서민들을 울리는 자본주의 대신 다른 것으로 바꾸는 대중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영화가 끝나자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낸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극장 밖으로 뛰어나와 대중운동에 참여하게 될까. 감동과 함께 가슴 한구석 답답함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영화관을 나섰다.

박민자 /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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