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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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따라쟁이 아이들

2009-10-1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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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뉴욕차일드센터 아시안클리닉 부실장. 임상심리치료사>


미 공영방송(PBC)에서 보았던 광고가 기억에 남는다.
한 아버지가 냉장고 문을 열고 우유를 통째로 마시려는 순간 옆에서 지켜보는 아이 때문에 멈칫 한다. 교통체증에 갇힌 엄마가 연신 자동차 경고음을 눌러댄다. 순간 뒷좌석에는 어린 자녀가 엄마의 행동을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짧은 공익광고는 부모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나 행동거지를 자녀들이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에 부모가 자녀 앞에서 주의 깊게 말하고 행동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흔히 ‘자녀는 부모의 분신이다’라는 말을 한다. 우선은 자녀가 부모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아서 생김새가 비슷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자녀는 부모의 생김새만 물려받는 게 아니다. 자녀는 부모의 말투, 행동습관, 감정까지도 닮아간다. 특히, 발달단계상 영아기와 유아기에 있는 자녀들은 부모를 통해 언어를 습득하고 행동을 모방해가며 감정적 필요를 채운다. 따라서 어린 자녀일수록 부모들의 영향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엊그제 자기 전에 침대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어린 딸아이가 커다란 그림책을 들고 와서 옆에서 중얼거리며 읽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직 책을 읽을 줄 모르지만 흉내만 내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아이가 얼굴표정을 찡그리는 것을 보고 아내와 앞으로 얼굴 표정관리를 잘 하자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도 모르게 말할 때 심각해지고 얼굴 미간을 찡그리는 습관이 있어서 종종 지적을 받곤 하는데 어느새 딸아이도 그걸 배운 모양이다. 지난 번 한국에 갔다가 횡단보도에서 아이 손을 잡고 황급히 뛰어가던 한 모녀의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신호등이 깜박거리며 몇 초 안에 빨간불로 바뀔 순간이었는데 무슨 급한 일이 있는지 어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아끌며 100미터 달리기 하듯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천천히 다시 길을 가는 것이었다. 아마 그렇게 바쁜 일이 있
었던 것은 아닌 것 같아보였다. 다만, 횡단보도가 빨간불로 바뀌기 전에 얼른 건너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엄마는 무심코 급한 마음에 한 행동이겠지만 자녀는 횡단보도를 기다릴 줄 모르는 아이로 자라게 되는 것이다. 그 때 엄마가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 서서는 “횡단보도에서 빨간불로 바뀔 것 같으면 건너지 말고 기다려라”라고 말해주었다면 아이는 도로에서는 안전하게 길을 건너야 한다는 것과 살아가면서 종종 기다리는 법도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지 않았을까.

최근 상담을 통해 만나는 아이들 중에 강박증이나 불안증이 있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 심리사회 검사와 부모면접을 통해 그 원인을 찾다보면 부모가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한 고등학생은 자신의 방 안에 있는 물건을 늘 정돈해야 하고,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사람들에게 귀찮을 정도로 물어보고, 늘 머리를 만지며 손을 물어뜯곤 했다. 이 학생의 아빠가 그런 강박성향이 있었고 엄마는 불안증이 있었다. 물론 양 부모의 유전적 소인도 작용했겠지만 강박적이고 불안한 부모와 함께 생활하면서 환경적으로 체득한 증상일 가능성이 높다. 예전에 입양아를 상담한 적이 있다. 이 아이는 유전적 소인이 완전 다른데도 양부모와 행동과 감정적 특성 면에서 많이 닮아 있었다.

자녀들은 부모를 늘 지켜보면서 성장한다. 그리고 부모의 말과 행동 및 감정적 특성을 그대로 모방하게 된다. 가정은 자녀들에게 최초의 사회적 환경이라고 말한다. 자녀는 가정에서 느끼고, 배우며, 행동하는 것을 향후 학교, 친구관계, 가정, 직장, 지역사회와 같은 다른 사회적 환경 속에서도 그대로 반복하게 된다. 따라서 밖에서 자녀가 행동하는 것을 보면 그 부모를 알 수가
있다는 말이 그리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롤 모델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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