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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 “회사 전자현미경을 부쉈어요”

2009-10-0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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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실수는 발전의 기회
스스로 해결하도록 해야

필자의 큰 아이가 렌트비를 아껴서 학비 융자금 상환에 보태겠다고 하면서 친구와 룸메이트 생활을 청산하고 집에 들어와서 함께 살기 시작했었다.


그런 어느 날 시무룩한 표정으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I had a terrible day at work today.” 회사에서 끔찍한 일이 있었다면서 저녁식탁에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데?” 우리 부부는 귀를 쫑긋 세우고 아이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오늘 회사에서 일하다 전자현미경을 부쉈어요.” 한 달 전에 새로 취직한 곳에 전자현미경이 있다고 해서 필자는 “와, 네가 직접 사용하느냐?” 하고 경탄했었다. 아이도 전자현미경을 비롯한 다른 화학연구 기구를 다룰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 화학 엔지니어로서의 경력을 쌓는데 도움이 된다고 좋아했었는데 취직한지 한 달 만에 그 회사에 단 한 대 있다는 전자현미경의 렌즈를 샘플에 가까이 접근시켜서 촬영을 하다가 렌즈가 샘플을 짓누르면서 망가졌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우리 부부의 가슴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부모로서 이 일을 어찌해야 좋을지 눈앞이 침침해 왔었다. “좀 조심하지 않고서는?” “어쩌다 그런 실수를 했어?” “그거 엄청나게 비싼 거 아냐?” “네가 물어주어야 되는 거니?” “높은 사람들은 뭐라고 그래?” 이런 식의 심문, 야단, 질책, 책임추궁의 말들이 먼저 머리에서 막 떠올랐다.

그런데 필자는 일과에서 상담을 하는 학생들에게는 그 아이들이 어떤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도 단 한 번도 질책이나 책임추궁의 질문을 하는 적이 없다는 것을 퍼뜩 떠올렸다.

우리는 “Tell us more.” 한마디 주문하고는 가만히 말없이 아이가 그 일을 말하도록 기다려 주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사 광고 선전에 나오는 그 곤란한 지경은 비길 바가 아니었다.” “수퍼바이저를 찾아가서 사고를 보고할 때 자신의 표정이 마치 누군가가 죽기라도 한 거 아닌가 느낌을 줄 정도로 침통한 표정”이었다고 동료가 나중에 알려주었다는 등 그때의 충격과 당혹감을 표현하였다.

이때 또 필자는 “나도 옛날에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필자의 옛날 경험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UCLA 의대 뇌신경연구소에서 부연구원으로 일할 때 실수를 하여서 아이오딘 131 방사성 물질을 실험실 바닥에 쏟아서 난리가 났던 일, 2리터짜리 유리 눈금 실린더를 깬 일 등. 하고 싶은 말들이 뭉게구름처럼 떠올랐다. 그러나 그런 충동을 용케 참고 견디면서 아이가 기분을 끝까지 말하도록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또 필자는 이런 큰일을 필자가 저질렀을 때는 어떻게 행동했는지 필자의 문제해결 방법을 전수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아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퇴근을 했는지 먼저 들어보았다. 수퍼바이저를 찾아가 일이 일어난 경위를 보고하고 피해상황을 함께 점검했다고 했다.

내일 출근하면서 어떤 기분으로 출근하게 될 것인지 또 회사에 가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물어보았다. “I don’t know.” 말을 얼버무리면서 다소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필자는 “그래” 하고는 그냥 바라보아 주었다. “설마 어떻게 되겠어?” “괜찮을 거야.” 이런 말들은 아이의 그 불안한 심정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이 일로 어떤 경험을 하게 되었는지 “So, what is it like to have this experience?” 물었다. 아이는 매우 비싼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록 실수는 했지만 일과 중에 발생한 일이니까 “No need to apologize to anyone though.” 이 한 마디를 끝으로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그 날 저녁에는 마무리를 지었다.

자녀가 실수를 저질렀을 때 이것을 배움의 기회로 만들어주는 것은 중요한 부모 기술이다.

그러나 실수했다가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맞고 자란 부모 세대에게 행여 실수할지도 모르는 이런 일에 나설 엄두가 나지 않게 된다. 실수했을 때 야단치는 부모는 누구나 자녀 잘되기를 원하는 부모들이다. 그러나 야단맞는 자녀는 “내가 뭔가 부족하구나” 하는 자존감의 상처, 그리고 “실수하면 이렇게 무섭구나. 절대 실수할 짓은 저지르지 말아야지”하는 왜곡된 사고구조를 가지게 된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실수 없는 성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질책당한 우리 자녀들은 실수하면 야단맞고 창피하니까 어른이 되어서도 혹시 실수해서 부모나 선생님에게 야단맞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던 아이들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한다. 실수가 두려워서 자녀들은 삶의 목표를 낮추어서 안전한 것으로 수정하게 된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나 다른 어른들 마음에 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 어떤 아이들은 질책이 두려우니까 거짓말로 자신의 실수를 덮으려고 한다. 이런 것이 결코 부모의 의도는 아닐 것이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으며 실수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부모가 수용하지 못하면 자녀들은 오직 실수하지 않으려고만 노력한다. 학교에서, 밖에서, 집에서 실수한 자녀에게 부모는 “unconditional support”를 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자녀의 기분을 아무 편견 없이 들어주고, 기분을 물어보아 주고, 경험을 이야기하도록 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아 주고, 그리고 자녀 스스로 이 문제를 헤쳐 나가는 것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아 주는 것을 말한다. 추궁, 문책, 충고, 부모경험 자랑, 해결책 제시 등은 실수를 하고 돌아온 아이들의 자존감을 크게 손상시키는 잘못된 부모 기술이다.


리차드 손 <임상심리학박사·PsychSpecialists, Inc.>
(213)234-8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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