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 서정과 추석

2009-10-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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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한가위 명절이다. 추석이 다가올 때마다 달려가는 고향 길은 동화 속 그림처럼 가슴속에 남아있다. 명절 때가 되면 만성 체증을 겪는 고속도로를 피하여 국도를 이용하는 것으로 습관이 되었다. 길섶마다 지천으로 핀 가을꽃들은 생명력이 경이롭다. 가을꽃에는 가을하늘의 푸름과 깊이만큼 성숙한 인생의 의미를 담고 있을 것만 같다.

추석명절에 그리운 고향을 찾지 못하는 이민자들은 마음으로 달려간다. 보고 싶은 얼굴들이 둥근 달빛에 어른거리지만 무딘 가슴으로 달래곤 한다. 이민 초년생에게는 불쑥 불쑥 도지는 향수를 걷잡을 수 없는 날이 많다.

얼마 전에 추석 명절이 다가오고 공부에 지쳐있는 나는 이민 선배를 따라 주점을 찾았다. 몇 잔의 독한 술 탓일까. 아니면 우수와 감정을 쥐어짜는 서글픈 음계 때문일까. 도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왜 여기에 남아 있어야만 하는가.
추석날 온가족이 만나 차례를 지내고 정을 나누지 못하는 아쉬움이 가슴을 파고든다. 어느새 나는 향수에 젖어 몸으로 우는 흐느낌의 음색으로 부터 공략을 당하고 있었다.


이민자 중에는 외롭고 고단한 삶을 잊으려고 가끔 술과 오락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욕구가 있다, “정”과 진정한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다.

삭막한 생활에서 물큰한 정이 샘솟는, 가슴과 가슴이 통하는 누군가가 있어 서로 껴안고 실컷 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꼭 필요하다. 한가위 둥근 달이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 앉아 창문에 어른거리면 이역 멀리 떠나온 사람의 심정은 얼마나 고독 할까. 이민자들은 누구나 자연스럽게 신명나게 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명절 때면 나는 그냥 흔들리고 싶어진다. 햇살이 고운 가을볕에 답답한 울기를 말려 버리고 자유롭게 갈기를 펴고 날고 싶어진다. 흔들림이 없는 일상에서는 울림도 떨림도 없다. 삶도 사랑도 흔들거리며 제자리를 잡아준다. 노을 진 하늘가에 새들이 날아간다.

오직 갈기를 흔들고 귀향을 꿈꾸며 만리장천을 날아간다. 새가 날고 강물이 뒤척이는 가을 강가에서 나는 어쩌면 흔들림은 살아 있음이라 생각을 하게 된다. 강물이 일렁이고 바람 부는 강둑에 억새꽃이 일렁인다. 그리움이 가슴속에서 파초처럼 흔들린다.

추석을 지나면서 고향에는 햇고구마와 과일이 지천이다.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가 붉게 타면 가을 햇살에 오곡이 여물고 장독 옆 키 큰 감나무에 빨간 감들이 단물을 머금을 것이다. 초가을 고향은 풍요롭다, 푸른 하늘에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들은 단연코 고향의 자연 화폭임이 틀림없다. 먼 이국에서 마음만 보내는 것이, 이렇게도 가슴 애린 것은 보고 싶은 얼굴 때문일 것이다.


안주옥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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