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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 아이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

2009-09-2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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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애착 현상과 사랑의 조화
자녀 정서·성격에 긍정적 영향

프리스쿨이 시작하는 첫 주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진땀을 흘리게 된다. 처음으로 부모에게서 떨어져 학교에 다니게 되는 경험은 아이에게 아주 충격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상황에 반응하는 모습은 각기 다르다. 부모와 떨어지면 마치 세상이 끝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우는 아이도 있는가 하면, 부모의 볼에 뽀뽀를 하며 손을 흔들고 마는 아이도 있다.


아침마다 아이들이 부모와 이별하는 모습을 보며, 그 아이들이 부모와 맺고 있는 특별한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영국의 정신과 의사이며 ‘Attachment theory’(첨부 이론 또는 애착이론)로 유명한 Bowlby는 아이가 처음으로 부모와 맺게 되는 이 관계를 아이가 평생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모든 인간관계의 기반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이가 누군가에게 애착 형성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인 어린아이가 생존하기 위한 본능 때문일 것이다. 아이는 애착 형성을 할 때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아내는 능력까지도 가지고 태어난다. 아기는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 외에도 안아주고 사랑하는 사람을 따르게 된다.

애착 형성의 이론의 선구자인 Bowlby는 아버지가 외과의사여서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어머니보다는 유모에 의해 키워졌고, 7세 때 벌써 보딩스쿨에 보내졌다. 그 당시 영국에는 부모가 아이에게 너무 관심과 애정을 보이면 아이에게 해가 된다는 설이 만연했다. 이에 따라, Bowlby는 그다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적지 않은 고생을 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훗날 Bowlby는 특별히,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겪는 고통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과 비행 청소년들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였다.

애착 형성은 아이의 성장에 필수적이지만 모든 아이가 믿을 만한 사람을 만나는 행운을 얻는 것은 아니다.

고아원에서 아기를 입양해 온 아이를 키우는 일이 쉽지 않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발달심리학자인 Erikson은 양육하는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가 아닌가에 따라 유아기에 벌써 세상에 대해 신뢰감과 불신감이라는 개념이 형성된다고 하였다. 이 시기에 신뢰감을 형성하지 못한 아이는 정서적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그 이후에도 부모가 사랑과 인내로 아이를 보살피면 그 신뢰감을 다시 회복하게 되지만 …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자라는 아이의 경우에도 모두 부모와 안정된 애착 형성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아기는 더 없이 사랑스러운 존재이지만, 양육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사랑하기에는 너무 힘든 존재일 수도 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지만, 부모가 아기가 태어난 순간부터 아이와 사랑에 빠지기는 쉽지 않다.

얼마 전 아이를 대학에 보낸 친구가 “자식 키우다 끝나는 게 인생인가 보다”라며, 대학을 보내면 자식 걱정이 다 끝나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라고 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신의 인생까지도 바칠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기가 어떻게 또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건 무조건적인 사랑인 주는 것이다. 그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애착 형성이 되는 유아기가 더 좋겠지만, 그 시기를 벌써 지나고 초등학교에 다니거나 십대가 되었다거나 하더라도 결코 늦은 것은 아니다.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고 좋은 관계를 가진 아이는, 마치 머릿속에 궤도를 입력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 뒤 어떤 사람을 만나건 좋은 관계를 가지게 된다. 그 뿐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되더라도 잘 견뎌낼 수 있게 된다.

30년간 가족 상담을 해온 Judy Ford는 ‘Wonderful Ways to Love a Child’(아이를 사랑하는 놀라운 방법)라는 조그만 책을 썼다. 주디 포드는 그 책의 첫 장에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먼저 자신을 사랑하세요”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새롭고 조그만 아이를 위해 당신의 인생에 공간을 마련하는 첫 단계입니다. 그래야 그 아이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아이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한다.

우울증이 있는 어느 부인이 아기를 낳고나니 더 우울해져서 아기를 사랑하기는커녕 보살필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 부인은 어렸을 때 입양되어 미국에서 자란 사람인데, 자기의 친부모와 양부모가 모두 자기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어렸을 때 부모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었거나 지금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건 상관없이 인간은 조물주의 걸작품일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은 자신이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직장생활을 하다 그만 두고 아기를 키우고 있는 어느 부인은 아기를 키우는 일이 풀타임 직장 생활보다 더 힘들다고 한다. 바깥세상과 단절되고 휴식도 취할 수도 없이 아기와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엄마는 우울해질 수도 있다.

아이를 사랑하는 일은 아이 자신을 위하는 일인 것 같지만, 결국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하지만, 아이를 사랑하다 보면 그 아이는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행복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자신을 보살피고 사랑하는 일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홍혜경 <프리스쿨 특수교육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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