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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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몫의 행복 찾기

2009-09-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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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카운티 사상 최악의 ‘스테이션 산불’이 거의 진화됐다. 나는 이번 산불로 직접적인 재난을 당하지 않았으나 공황상태의 충격과 공포로 고통을 받았다.

우리 동네 인근 산에 불길이 한창 번지던 8월 28일 한밤중에 잠이 들려는 차에 소방서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급하고 단호한 음성으로 불이 가까이 있음을 경고하면서 앞으로 30분마다 전화로 불의 진행 상태를 알려줄 터이니 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혹시 대피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가지고 나갈 물건을 챙기려고 집안을 둘러보니 이것도 저것도 갖고 나가야 할 것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추린 건 집 관련 서류, 여권, 은행 체크 북, 옷 몇 가지, 약병 몇 개, 가족 사진틀 그리고 함께 사는 개 두 마리 정도였다. 다행히 밤새 염려했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침에 문을 열어 보니 재와 연기로 시야가 닿는 곳은 온통 잿빛이었고 매캐한 매연으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지난 20여 년간 ‘LA는 지상천국‘이라는 생각으로 따듯하고 화창한 LA의 날씨를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 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산불이 자주 나면서 마음 한구석에 나도 산불피해를 받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슬며시 들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여직까지는 내 집 주변이나 우리 동네와 거리가 먼 곳에서 일어난 불이라 먼 산 불구경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산불은 규모면에서도 엄청났지만 바로 지척에서 일어난, 나도 당할 뻔한 공포의 산불이었다.


이제는 산불이 강 건너 불보기가 아니다. 이곳 LA에 사는 걸 마냥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만 없게 됐다. 더구나 이곳은 언젠가 올지도 모르는 지진 ‘Big One’에 대한 공포도 있지 않는가? 지진공포나 산불 공포가 없는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가야하나? 그런 생각도 해 볼만 하지만 다른 곳은 지진이나 산불 말고 다른 재난이나 열악한 환경 때문에 또 고통을 받고 살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프랑스의 어느 통계학자의 범죄 포화설이란 걸 읽은 기억이 난다. 어느 나라나 사회를 불문하고 또 시대와 관계없이 일정한 비율로 범죄가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범죄를 행복으로 바꾸어 행복 포화설은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봤다. 각자가 “행복하다”고 생각되는 아이템을 모은다면 결국 행복의 개인 차이 없이 다 같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히말라야의 소국 부탄이나 방글라데시는 지구상에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하는데도 그 나라 국민의 행복지수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나는 이번 산 불 화재를 겪으면서 내가 누려야 할 내 몫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찾으며 살기로 했다. 자식들이 둘이나 노총각으로 결혼을 않고 있어서 내 속이 탄다. 그러나 잘난 자식 두고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나름대로의 걱정거리가 있으리라. 우리 아이가 건강하고 직장 잘 나가니 행복한 거 아닌가. 가끔 산불로 곤혹을 치르기는 하지만 LA 날씨는 정말 신의 축복인 것 같다. 그런 날씨를 즐기며 사는 것은 또 얼마나 행운인가? 이번 산불은 나무도, 집도 태우고 인명도 앗아갔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면서 나의 집착도 태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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