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계영배의 지혜

2009-09-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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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하루는 제나라 환공의 사당을 찾았는데 거기서 묘하게 생긴 잔 하나를 봤다. 똑바로 세워져 있지 않고 옆으로 삐딱하게 기울어진 좀 병신스러운 잔이다. 그래서 공자님은 “이런 것이 왜 여기 있느냐고 사당 관리인에게 물었더니 관리인 대답이 “환공 생전에 항상 곁에 두고 보시던 그릇 유좌지기(宥坐之器)입니다. 속이 비었으면 기울어지고 알맞게 물이 차면 바로 서지만 너무 가득 채우면 엎질러집니다였다. 이 말을 듣고 공자는 탄식했다. “세상에 가득 차고도 엎어지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 공자님의 언행을 수록한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글이다.

제나라 환공은 젊었을 때 검소하고 겸손해서 선비들을 우대하고 관중 같은 인재를 재상으로 등용해서 훌륭한 정치를 했다. 그러나 나라가 부강해지고 자신은 패(覇), 즉 모든 제후들 위에 있을 정도로 위치가 대단해지니까 점점 사람이 교만해져서 더 큰 것을 욕심내게 된다. 그래서 무리한 전쟁을 여러 번 일으켜 국력을 크게 소모 시키면서도 자기에게 아첨이나 하는 간신들만 등용하여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나중에는 자식들 간에 후계자싸움이 벌어지는데 그 와중에서 자신은 감금되어 물 한 모금 못 얻어 마시고 굶어죽었다.

공자는 “환공 같은 훌륭한 사람도 나중에는 이렇듯 자만과 욕심에 빠져 일을 그르칠 수 있는데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느냐 탄식한 것이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욕망, 이것이 바로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인 것이다. 공자는 그 잔을 곁에 두고 보며 스스로를 경계했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 나오는 계영배는 공자의 유좌지기에서 힌트를 받은 것 같다. 계영배의 계(戒)는 경계할 계, 영(盈)은 가득 채울 영, 배(盃)는 잔 배. 그래서 가득 채움을 경계하는 술잔이라는 뜻이다. 술을 부으면 70%까지 채울 때까지 술이 그대로 있는데 그 이상을 넘으면 술이 없어진다. 주인공 임상옥은 이 잔을 곁에 두고 과욕을 경계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잔의 70%까지만 채운다는 것은 반드시 절제만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그 보다는 내 것으로는 70%만 채우고 나머지 30%는 여유로 남겨두라는 뜻이 아닐까. 장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100%를 다 채우면 고객이 들어올 틈이 없다. 그래서 고객이 들어올 자리 30%는 항상 남기라는 뜻일 것이다. 장사한다고 돈을 쫓아 안달복달하여 귀멀고 눈멀고 마음까지 머는 것이 바로 장사꾼의 비극이다.

임상옥은 “나와 거래하는 사람들은 다 돈을 벌어라. 나와 거래하는 사람이 손해를 보면 안 된다. 모두 내 덕을 봐라”는 자세로 거래를 했기 때문에 사업에 성공했다. 사업은 주는 만큼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계영배를 통해서 넘치는 것을 경계하는 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공자 왈 “만초손(滿招損) 가득차면 손해를 보고 겸수익(謙受益) 좀 모자란듯하면 이익을 얻는구나.” 내가 좀 양보하고 절제하면 이담에 더 큰 것을 얻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김정수 / SF 한글 사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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