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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보르도’ 칠레의 명품

2009-09-09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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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마비바 (Almaviva)

다른 와인 생산국들이 자연적인 조건과 싸워나가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칠레는 주로 정치 경제적인 문제가 와인 산업의 장애물이 되어 왔다. 초창기 식민지 시대에는 와인 산업이 커져만 가는 칠레에 위기감을 느낀 스페인 정복자들의 방해가 그 원인이 되었고, 1902년에는 알콜 규제법의 제정이, 1938년에는 와인 생산량을 규제하는 법이 문제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정부의 수입 규제 조치로 와인 업계는 기술 발전을 위한 장비와 기계 수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면서 급진적인 토지 개혁의 미명 하에 수천 헥타르의 포도원이 갈아 뭉개지는 수난을 겪었다.

하지만 칠레의 와인 산업은 1985년을 기점으로 상승곡선을 그리게 된다. 여기에는 보르도의 영향이 가장 컸다. 이미 필록세라가 기승을 부리던 19세기 중반,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프랑스 보르도의 와인 업계 종사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은 칠레로 넘어와 와인을 생산하게 되었고, 이 시기에 들어서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보르도 와인을 배워 자국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열풍은 1990년 칠레와인의 르네상스를 만들어낸다. 냉해 피해나 병충해 피해가 거의 없는 일정한 날씨, 따라서 살충제나 화학약품이 필요 없고 또한 인건비도 싸며 안데스 산맥에서 녹아 흐르는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의 포도밭에 투자하지 않을 바보가 있을까. 유럽과 미국의 유수한 포도원들이 칠레의 포도원들과 손을 잡기 시작했다. 1970년 스페인의 미구엘 토레스(Miguel Torres)가 처음 투자를 했고, 1987년 샤또 라피뜨 로췰드는 비냐 로스 바스꼬스(Vina Los Vascos)와 합작투자를 발표했다. 1994년에는 리큐르 회사로 유명한 프랑스의 알렉산드라 마르니에 라뽀스똘(Alexandra Marnier Lapostolle)이 와인 컨설턴트 미셸 롤랑과 함께 칠레의 라바뜨(Rabat) 가문과 공동으로 까사 라뽀스똘(Casa Lapostolle)을 출범시키고 1997년 첫 빈티지로 끌로 아빨따(Clos Apalta)라는 최고급 레드 와인을 선보였다. 1997년 샤또 무똥 로췰드는 칠레의 대표적인 포도원인 비나콘차 이 토로(Vina Conca y Toro)와 합작하여 이듬해 1996년 빈티지의 첫 출시한 알마비바(Almaviva)라는 명품을 만들어냈다. 미국의 로버트 몬다비는 칠레의 비냐 에리쑤리스(Vina Errazuriz)와 함께 1995년 쎄냐(Sena)를 선보였다. 남미의 보르도라 불리는 칠레는 이렇듯 전세계의 와인 명가들을 유혹하면서 급성장했다. 그 규모를 보면 1990년 4400만 달러의 수출실적이 2002년 6억2백만달러로 증가할 정도였다.

그러나 칠레를 위한 대부분의 뉴 월드 와인 생산 국가들이 이른바 카버네 소비뇽, 샤르도네라고 하는 유럽의 노블 품종을 내세워 수출시장에 주력하다보니 자국 와인의 정체성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 뉴 월드 각국은 자국만의 품종을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미국의 진판델, 아르헨티나의 말벡, 우루과이의 타나(tannat)가 있다.



알마비바 2005년도산.


‘성공 비즈니스를 위한 와인 가이드’
(김기재 지음·넥서스 Book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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